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일본 공포영화 시리즈 <주온>(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현대인에게 잠재된 일상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다. 특별히 죄지은 이도 없다. 그냥 그 집을 스쳐가기만 해도 저주를 받는다. 원인이나 해결책은 없고, 원혼들은 이불 속에서부터 샤워실, 천정, 거실 탁자 밑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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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2>개봉 맞춰 내한한 시미즈 다카시 감독
2003-09-09

"공포의 밑바닥은 나의 장난기"

<링>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일본 공포영화 시리즈 <주온>(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현대인에게 잠재된 일상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다. 특별히 죄지은 이도 없다. 그냥 그 집을 스쳐가기만 해도 저주를 받는다. 원인이나 해결책은 없고, 원혼들은 이불 속에서부터 샤워실, 천정, 거실 탁자 밑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을 다 드러낸다. 괴상한 소리와 시·공간이 뒤틀린 옴니버스 형식은 기이함을 더해준다. 도대체 이런 시리즈를 만드는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공포영화를 얼굴로 만드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뜻밖이다. 지난 4일 <주온 2>의 개봉에 맞춰 주연인 사카이 노리코와 방한한 그는 땅딸한 체구에 검은 캡을 눌러쓴 채 너무나 순하거나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게다가 이 공포가 ‘장난끼’에서 발동했다나.

-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다. 공포영화를 좋아했나?

= 무서운 책을 읽는 건 좋아했는데 공포영화는 전혀! 근데 중학교때 미국의 공포영화들이 유행할 때 친구의 강권으로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안 무섭더라. 그래도 몇년전까지 내가 공포영화를 만들지는 꿈도 못 꿨다. 아마 내 장난끼가 지금까지 이어진 덕인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남을 놀래키거나 기쁘게 또는 슬프게 하는 모든 장난을 좋아했는데 공포영화는 그런 기질의 한 부분일 뿐이다. 다음엔 아주 웃기는 코미디도 하고 싶다.

- <주온>이 공포영화로 성공한 이유는 뭘까?

= 회사원, 학생, 주부 등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가는 아주 일상적인 사람들이 일상적 환경 속에서 저주받는 모습에 사람들이 더 강한 공포감을 느낀 것 같다. 또 하나 <링> 같은 이전 영화들이 무서운 걸 조금만 보여주고 말았다. 남들과 같은 걸 하기 싫어 ‘그래, 관객들이 웃어도 좋으니 최대한 보여주자’고 마음 먹었다.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지만 이런 장르를 많이 보지 않았던 이들은 더 무서워했다.

- 1편이 쉴새없이 공포감을 주는 데 비해 2편은 드라마가 강하다.

= 1편은 보고나서 무서운 건지 아닌지도 헷갈리게 하고 싶었다. 세상이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이랄까. 2편에선 모성애에 관한 보통의 휴먼 드라마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느낌을 비교하자면 1편이 ‘귀신집 이야기’같을 거다.

-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 등처럼 공포영화에서 모성애는 익숙한 테마다.

= 남들을 따라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유령보다 여자가 더 무섭다.(웃음) 그보다는 공포영화가 여성관객이 많아서일 거다. 근데 여자들은 웬만하면 안 무서워한다. 그래서 보는 이들에게 뭔가 자신 안에 이물감 같은 걸 느끼는 공포를 심어주고 싶었다.

- 2편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 그 집에 가지도 않았던 치하루라는 학생의 에피소드인데 뭐랄까. 시·공간이 비틀어져 스쳐지나가는 듯한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바로 곁에 있어도 인식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간들의 슬픈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그건 아마 내가 어렸을 때 를 보고 영화를 꿈꿨듯 팬터지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드러난 에피소드일 것이다.

- <이블데드>의 샘 레이미 감독이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권을 샀고, 감독을 당신에게 맡겼다. 어떻게 달라지나?

= 이야기는 일본의 ‘그 저주받은 집’을 우연히 온 미국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옴니버스 형식이나 여러 사람이 저주를 받는 건 같다.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건조한 느낌이라면 한국이나 일본 영화는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느낌인데, 아주 끈적끈적하게 가보고 싶다. 카메라를 많이 움직인다든지, 집을 세트로 다 만든달지, 일본에선 여건상 못한 걸 다 해볼 거다.

- 원혼의 무차별적 저주엔 이유가 없다. 이 저주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 언제까지일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근데 교통사고나 병으로 죽는 사람도 현실에서 왜 죽는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시미즈 감독은 어떤 은유나 의미를 숨겨두기 보다는 장르와 공식을 비트는 재주가 뛰어난 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기서 더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그만큼 원인모를, 무차별적인 피해의식에 젖어있다는 이야기 아닐까. 그의 마지막 장난. <주온> 시리즈에서 원혼이 내는 기이한 ‘끄억’하는 소리는 감독 자신의 목소리다. “어렸을 때 그런 소리를 내면 부모에게 ‘이상한 소리’라고 맨날 야단맞았다. 그때마다 ‘언젠가는 이 소리를 써봐야지’ 마음 먹었다. 지금 내 휴대전화 착신음도 이 소리인데 아마 아이가 들으면 한국영화 <폰>(그는 일본에서 이 영화를 봤다고 했다)에서처럼 아이가 부들부들 떨지 않을까 앗! 이러다가 <주온 폰>이란 영화가 나오겠다.” 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