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 작품과 작품의 바깥, 인물의 내면과 인물들의 상호관계를 묘하게 섞으며 추적한 프랑수아 오종의 흥미로운 영화 <스위밍 풀>은 닫힌 물의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에서도 그랬지만 오종은 폐쇄된 공간을 주어진 상황으로 설정해놓고 그 안에 인물들을 던져넣기를 즐긴다. 라신 같은 프랑스 고전비극 작가의 폐쇄적 구조를 연상케 하는 설정 방식이다. 그 설정 속에서, ‘질투’와 같은 감정적 동력원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이야기는 시계톱니바퀴들의 연쇄처럼 정교하게 돌아간다.
음악을 맡은 필립 롱비(Phillipe Rombi)는 1999년작 <죄지은 연인들>(Les Amants Criminel) 이래로 오종과 모두 3편을 작업하고 있다. 2002년작 의 음악을 쓴 크리슈나 레비를 빼면 최근 오종 영화의 단골 작곡가인 셈.
그의 음악은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음악가의 격조를 느끼게 해준다. 오종의 2001년 작품인 <모래 밑에서>(Sous le Sable)의 테마에서 들려준 우아한 첼로 사운드의 우울을 감상하다보면, 역시 유럽의 영화음악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대번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아하기만 한 게 아니라 미스터리스릴러에 잘 어울리는 긴장감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이런 사운드의 구사는 <택시 드라이버>를 쓴 버나드 허먼의 우울한 도시적 색채감을 연상케 한다. 물론 롱비의 음악에서 프랑스영화 특유의 매끄러움과 세련됨이랄까, 뭐 그런 것들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점에서는 프랑스 영화음악의 살아 있는 대부 미셸 르그랑의 전통이 젊은 음악가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스위밍 풀>의 음악은 ‘5각형’이다. C장조로 옮겼을 경우 ‘미도시라미’로 계명을 읽을 수 있는 다섯개의 음이 영화 전체를 사로잡고 있다. 롱비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 테마를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한다. O.S.T의 첫 트랙을 장식하는 테마음악에서 롱비는 핏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피아노 음색으로 이 다섯개의 음을 제시한 뒤, 첫음을 반음 떨어뜨렸다가 다시 전체 다섯음을 그것보다 반음 더 떨어뜨리며 반복시킨다. 이처럼 전조되면서 반복, 변주되는 테마는 인물에서 인물로 옮겨가며 서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마치 피아노 콘체르토처럼, 반복 제시된 이 5각형의 피아노의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미묘한 울림으로 이어지면서 사운드의 스케일은 커진다. 5각형의 닫힌 느낌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영하면서 변주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닫힌 미스터리의 공간 속에 사로잡아두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느 인터뷰에서 프랑수아 오종은 “닫혀 있는 물의 이미지”로서의 수영장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수영장은 보통 물과는 달리 흐름이 규제되어 있고 사각형의 공간에 인위적으로 담겨 있다. 푸른 단색의 수영장 바닥 색깔로 인해 일부러 ‘물’이라 호명된 그 물은 체계적인 물, 관념적인 물이다. 오종은 수영장을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고 관계들이 스며들어 있는 스크린” 같다고 이야기한다. 롱비의 음악에 따르면, 그 물은 5각형의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5각형의 변주, 닫힌 물의 이미지, 이처럼 이미지의 일관성이 사운드, 음악의 일관성으로 이어지면 벌써 그건 훌륭한 영화다. 성기완 /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