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과 더불어 어어부의 주요 멤버이기도 한 장영규는 요즘 학교 안팎의 전위적 현대 음악 작곡가들을 통틀어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출발점은 분명 음악의 권력이 만들어지는 곳 바깥이었다. 한마디로 묵묵히 자기 색깔을 칠해나가는 주변부적 자기 중심을 가진 음악가였다. 그러나 요즘, 그에 대한 관심과 이해, 선호의 폭은 학교 안, 바깥의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그런 ‘관심의 통합’을 이룬 거의 최초의 뮤지션이 아닐까 싶다. 무용가 안은미의 단골 음악감독이기도 한 그는 저명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시에게도 음악을 만들어줄 정도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단계에 있다. 사실 그의 두각은 요즘 제도권 ‘전위음악’의 출구가 막혀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12음 기법 이후의 서양음악이 겪은 변화의 과정을 형식화해 수용하는 데 그친 한국의 현대 음악계는 그것을 자기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다. 남을 쫓아가는 대신 분명한 자기 스타일과 주관을 가지고 움직이는 장영규의 현대음악은 한국 음악계에 하나의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은 1980년대 영국의 뉴 오더나 디페시 모드, 재팬 같은 밴드에게서 영향받은 이른바 ‘신디 팝’이었다. 그가 이끌었던 ‘도마뱀’이라는 밴드는 한장의 앨범을 내고 말았지만 그들이 들려주었던 뉴 웨이브 사운드는 신선한 것이었다. 장영규는 그와 동시에 수많은 연극/공연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음악적 언어를 점차 심화한다. <반칙왕>이나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음악을 통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의 음악은 그가 만든 다른 어떤 영화음악보다도 전위적이지만 최근 그의 음악적 관심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는 마림바나 쇳소리 나는 벨 같은 멜로딕 타악기를 주요 악기로 삼고 있다. 이런 악기들을 그는 참 즐겨 쓴다. 또 그 악기들의 연주를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연주된 것들을 다시 디지털 샘플링하여 단위별로 묶어 들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최근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폴리 리듬의 묶음들 뒤로는 단말마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 느린 단선율이 흐른다. 때로 그 단선율은 전지연의 무의식을 연상케 하는 듯한 여린 여자보컬로 대체되기도 한다. 코드를 쓸 때에는 대개 두개가 반복이다.
백현진이 만든 O.S.T 재킷을 보다보니 제목들이 눈에 띈다. 장영규는 음악의 성격에 따라 <Work A>부터 <Work D>까지 네 갈래의 상위분류 체계를 만든 다음 그 하위 체계로 작품마다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Work D-3> 뭐 이런 식으로. 이처럼 다단계 가지치기 같은 분류는 하나의 곡 내부의 리듬 체계에도 적용된다. 처음에 도입되는 미니멀한 리듬 샘플이 그 다음의 좀더 복잡한 하위 리듬의 묶음들로 분화되고 그 분화 뒤에 흐르는 느린 단선율의 배음 멜로디가 그 분화된 가지들을 통합하는 줄기 노릇을 한다. 그로테스크하고 거대한 나무와 나무에 달린 가지, 열매들 같다. 이처럼 미니멀하고 폴리 리듬적인 리듬 분할과 그 통합은 이번 영화음악, 혹은 최근 장영규 음악의 핵심 컨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전위적일 때 좀더 조금 키치적일 때(<반칙왕>에서처럼)의 장영규가 더 좋다. 언제나 ‘사운드’의 신선함으로 승부해나가는 그의 음악에서 키치적일 때가 더 신선하게 들리기도 한다.성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