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장을 앞둔 백화점에서 연달아 직원들이 죽어나가고, 미궁에 빠진 사건은 전혀 엉뚱한 곳에 해결의 실마리를 감추고 있다. 영화 <거울속으로>를 설명하는 두개의 키워드는 ‘대칭’과 ‘미로’다. 하나라고 생각했던 거울 안팎의 세계는 완전히 대칭되는 서로 다른 세계이며, 관객과 주인공은 예전엔 몰랐던 거울 속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뒤집힌 ‘딴’ 세상 이야기였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탁한 색감, 거친 숨소리, 공간에 갇힌 듯한 인물 묘사는 시종일관 관객의 가슴을 압박한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깔끔한 킬러룩(?)을 선보인 함현주 의상팀장이 가세해 화면은 더욱 어두운 기운을 발산한다. 형사들이 등장해도 특수의상이랄 것이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의상은 통틀어 두세벌 정도지만, 인물의 성격을 일관되게 드러내는 데는 오히려 제격이다.
한번의 실수로 동료 형사를 죽음으로 내몬 뒤,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우영민(유지태) 형사의 경우, ‘루저’(loser)의 이미지를 위해 칙칙한 색으로 온몸을 휘감고 나온다. 짙은 카키색과 한톤 다운된 그레이 색상은, 매사에 의욕없이 침통한 표정으로 휘적거리는 우 형사의 대표 컬러.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를 우 형사의 실수로 잃은 하 형사(김명민)는, 마음속에 열정인지 분노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끓어오르는 감정을 감추고, 냉정함으로 무장한 인물. 얼핏 차갑게 보이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한 그를 표현하기 위해, 네이비 블루와 짙은 갈색 천이 각각 의상의 겉과 안감으로 대어졌다. 중요한 순간마다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며, 사건의 중심부로 두 형사를 몰아가는 신비의 여인, 지현의 의상은 단 한벌. 그녀의 쌍둥이 언니로 등장하는 정현의 의상이 하얀색 원피스로 클래식함을 강조했다면, 지현의 의상은 에스닉한 느낌이 강한 편. 어딘가 비현실적인 인물임을 강조하려는 일종의 복선이다.
감독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이 뭔가 대단히 이상한 꿈을 꾼 듯한 느낌을 받길 원했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들, 몽환적인 이야기구조를 위해, 세트와 의상이 제일 먼저 거론됐다. 유니폼을 미래적인 이미지로 만들고, 세트 데커레이션을 인위적인 느낌으로 가져가자는 의견은, 재개장 첫날 이벤트홀에서 열린 좌우대칭의 기하학적 모델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함현주씨는 의상학과 재학 시절, 특별 강사로 초빙된 정구호 디자이너와 안면을 익히게 돼 <텔미썸딩>으로 조수 생활을 시작했다. <킬러들의 수다>가 입봉작인데, 배우들의 물(?)이 워낙 좋다보니, 여기저기서 의상협찬이 들어왔다. 스타일리시하고 개성 강한 킬러들의 모습을 꾸미기 바쁘게, <밀애>를 맡아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미려하고 독특한 느낌의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 의상을 제작 중이다. 글 심지현·사진 이혜정
프로필 1976년생 | 경원대 의상학과 96학번 | <텔미썸딩> 의상팀 조수·<킬러들의 수다>로 입봉 | <밀애> 의상팀장 | <거울속으로> 의상팀장 | 현재 <그녀를 믿지 마세요>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