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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
2003-08-26

"동시대인 보는 관점 변했다"

김기덕 감독의 8번째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난 22일 광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을 통해 국내 처음 상영됐다.(9월19일 개봉 예정) 산골 호수 한 가운데 외딴 절에서 자란 스님의 어린시절, 사춘기, 청년기, 장년기를 계절에 따라 5개 장으로 나눠 죽 훑고 지나간다. 사춘기 때 절에 요양온 또래 여자와 정을 통한 뒤 여자를 못 잊어 절을 떠난다. 속세에서 치정에 얽힌 살인을 저지르고 그 절로 도망와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경찰에 잡혀간다. 출감 뒤 스님으로 돌아와 애욕이 빚어내는 희비극을 큰 마음으로 보듬기까지를, 4계절의 풍경을 빌어 시적으로 풀어간다.

구도(求道)를 다룬 때문인지, 김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잔혹하거나 위악적인 구석이 없다.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전작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쟁점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게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막작으로 상영될 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좋았으나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호오가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23일 광주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 영화 가운데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같다. 변화의 조짐으로 봐도 되는가.

그동안 내 영화가 뭐가 불편했는지 모르겠다. 지옥같은 일상을, 지옥같은 9시 뉴스를 보며 사는데. 변화라기보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롱숏(멀리 찍기)이다.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경 안에 묻히게, 좀 덜 선명하게 찍은 것이다. <섬> <나쁜 남자> 같은 게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까지 담는 클로스업의 영화라면, <수취인 불명> <해안선>은 그들이 사는 사회의 모습까지 함께 찍은 풀숏(몸 전체를 담아 찍기)의 영화다. 이번 건 롱숏의 영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영화마다 줌인, 줌아웃 하면서 찍을 거다. 물론 이 영화 하면서 변화는 있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했달까. 기본적으로 선한 인간, 악한 인간 대비시키는 이야기가 한계가 있지 않나. 다시 클로스업의 영화를 찍을 때, 좀더 선악을 떠나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다든가 하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

구도를 다룬 영화들이 직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도 직설적인 느낌이 있다.

나는 해답을 주지 않고 싶어했다. 주인공을 단수로 보지 말고, 복수로 봐줬으면 싶다. 다 불교에서 하는 얘기일 수 있지만, 불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걸 빌어 사람들을 말하고 싶었던 거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영화를 내가 너무 빨리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겨울 대목부터 김 감독이 주인공 스님으로 직접 출연하는데.

안성기 선배한테 죄송하지만, 원래 안 선배를 상정해놓고서 준비했다. 그런데 부탁을 바로 직전에 드려서, 안 선배가 찍고 있던 다른 영화 때문에 머리를 깎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사 직원들 모아놓고 투표했더니, 7대3으로 내가 출연하는 게 좋겠다고 나왔다. 연기는 그냥 솔직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한 겨울에 웃통 벗고 멧돌 매고 4시간 동안 주황산 정상까지 올라간 거다. 그러면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해서. 배우 썼다면 그 고생 시킬 이유가 없지.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여러 아이템이 있는데 <빈집>은 장기 여행이나 출장간 빈집만 골라 옮겨다니며 사는 남자의 이야기다. 빈집에 들어가 그집 TV보고 냉장고 쓰고, 도둑질은 하지 않고. 한 집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납치돼 감금돼 있는 여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런데 투자자를 못 잡고 있다. 앞으론 직접 제작하려고 지난 봄에 김기덕 프로덕션을 차렸다. 기존 영화사들과 하면 좋지만, 힘든 점도 있고. 며칠전 유럽에 입양간 애들 이야기인 <유리>의 시놉시스를 써서 독일 영화사 판도라쪽에 보냈다. <봄 여름…>에 투자한 회사인데, 내 영화에 투자할 의향을 계속 비추고 있다.

독립영화 감독이 된다는 말인데, 고생길 아닌가.

내 머리 속에 감독이라는 건 시나리오도 직접 쓰는 사람이다. 무협영화, 멜로영화 시나리오 가지고 와서 감독하라는 제안이 오는데, 남이 쓴 걸 소화할 능력이 없고 그 전에 칼싸움 잘하는 것 같은 데에 관심이 없다. 나로서는 배반인 것같다. 광주/글·사진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