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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임권택 감독의 자서전이 아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임 감독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 정씨의 질문이 임 감독 답변 만큼의 분량을 차지하는 일종의 대담집에 가깝다. 비슷한 형식의 <히치콕과의 대화>를 쓴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 감독과 인터뷰한 시간이 50시간인데, 정씨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임 감독과 64시간 동안 문답을 주고받았다. 원고지 20장을 청탁하면 50장을 써오는 일이 잦은 ‘작가주의’ 평론가 정씨는 이 인터뷰를 1, 2권 합쳐 1100페이지짜리로 펴내 또 독자들을 고문한다.

그러나 일단 펴들면 수월케 죽 읽혀내려간다. 임 감독의 개인사는 그 자체가 더없이 리얼한 한편의 영화이다. 1934년에 전남 장성 지주의 손자로 태어난 임 감독의 가족은 삼촌이 열혈 좌익분자였던 탓에 전쟁 통에 ‘산산조각’이 났다. “형무소에서 죽은 배다른 삼촌, 전쟁으로 고모부들도 다 죽었고, 고모도 빨치산에 가담했다고 잡혀서 평생 어디론가 굴러다니다가 죽었고…외가, 가운데 할아버지, 전부 다 참으로 작살이 났으니까.” 아버지가 너무 아파 산에서 내려온 51년 무렵, 18살의 임 감독은 가출해 부산으로 갔다. 거기서 밥 굶고 노숙하다가 미군 군화를 개조해 파는 일을 했고, 함께 장사하던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가 영화를 제작하면서 임 감독을 불렀다.

26살에 <두만강아 잘 있거라>(62년)로 데뷔한 임 감독은 “이번 영화 망하면 조감독도 못한다”는 생각으로 제작자의 주문이 오면 장르 불문하고 영화를 찍어냈다. 10대 때의 끔찍한 기억은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고, ‘빨치산의 아들’이라는 낙인 때문에 영화 안에 사회의식을 담아낸다는 건 아예 염두에 없었다. “그냥 저냥 찍고 돈 생기면 술 마시고, 왜냐면 미래를 나는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1년에 8편을 찍어낼 때도 있었던 60~70년대에 대한 임 감독의 회고는 때론 너무 솔직해서 웃음을 자아낸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 만들었다는 <잡초>(73년) 전까지 찍은 50편 가운데엔 스스로 내용을 기억 못해 정씨에게 되묻는 영화도 많다.

정씨는 임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시기구분을 질문 속에 녹여넣는다. 가끔씩 개념적인 정씨의 질문(그럴 땐 질문이 길다)이 “그런가요” “그건 내가 대답할 부분이 아니에요”라는 식의 임 감독의 답변과 엇박자를 이루는데, 그렇게 어긋났다가 다시 만나면서 빚어내는 공명도 재밌다. 정씨는 인터뷰의 리듬과 호흡까지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던 듯하다. 비평은 창작을, 창작은 비평을 나무라기에 바쁜 한국 영화 풍토에서 정씨의 열정과 임 감독에 대한 존경심은 충분히 소중해 보인다. 인터뷰를 끝내며 임 감독이 하는 약속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떻든 영화를 해나갈 거예요. 그것만은 약속할 수 있지요.”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1·2/ 정성일 대담·이지은 자료정리/ 현문서가 펴냄·각 권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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