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중음악의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여자 보컬을 앞세운 모던 록 밴드이다. 조금은 수줍은 듯, 기타를 퉁기며 눈을 내리깔고 노래하는 여자 보컬이 없으면 밴드 못 만들 정도. 물론 이런 스타일의 모던 록을 하는 밴드들 내부에도 많은 편차가 있긴 하다. 뷰렛 같은 밴드는 더 스트레이트하고 러브홀릭은 더 대중적인 느낌이며 스웨터는 조금 깜찍한 느낌. ‘라이너스의 담요’라는 신예는 어느 쪽일까?
밴드의 색깔은 귀여운 목소리의 보컬리스트이자 플루트 주자, 그리고 키보드도 치는 왕연진이라는 뮤지션이 많이 내고 있다. 뒤를 받쳐주는 두명의 기타리스트, 강민성, 배기준 역시 생톤 위주의 리듬 플레이를 차분하고 즐겁게 해주면서 튀지 않고 쿨한 느낌을 밴드의 음악에 가미한다. 이용석(베이스), 이용희(드럼)로 이루어진 리듬 파트는 8비트의 리듬을 중심으로 약간 재즈적인 분위기도 풍기는 흥미로운 리듬을 구사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강렬한 드러밍이라든가 튀는 베이스 플레이를 하지 않고 차분하게 뒤에서 밴드를 받쳐준다.
라이너스의 담요는 최근에 <시메스터>(Semester)라는 EP를 발매했다. 앨범에는 모두 여섯곡이 들어 있다. ‘시메스터’면 뭐 ‘학기’란 뜻인가. 앨범 제목은 학기지만 음악은 꼭 방학의 느낌.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어느 여름방학의 일기장이나 사진첩을 문득 들여다보는 듯한 음악들. 상큼한 <시그널 송>에 이어 왕년 아이돌 언니였던 모 가수의 노래 <보랏빛 향기>를 디스토션을 걸지 않은 잔잔한 전기기타와 플루트의 멜로디와 리듬 플레이로 따라가고 있는 연주곡이 두 번째 트랙이다. 이쯤 들으면 이들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요즘 음악 좀 듣는다는 젊은이들의 귀를 많이 점유하고 있는 일본 시부야쪽의 상큼함을 주무기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나. 거기에 벨 앤 세바스천 유의 약간은 복고적이고 내성적이며 낭만적인 영국 모던 포크록의 분위기도 덧붙여진다. 또 밴드 이름이 암시하듯, 어려서 보던 스누피나 요즘 유아들이 보는 <카이유> 같은 만화영화의 주제가 비슷한 앙증맞은 느낌도 들어 있다. 또 거기에 보사노바의 부드러움도 가끔씩 가미하고 있다. 어떤 노래는 프랑수아즈 아르디의 샹송 같은 달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웨덴 밴드 카디건즈의 그림자도 좀 보인다.
세 번째 노래인 <담요송>부터는 본격적으로 보컬리스트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한다. 비브라폰 소리를 내는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복고적이면서 부드러운 프렌치 팝 느낌을 주고 있다. 한글 가사가 실려 있는 노래는 이 곡 하나. 그 다음의 세곡 <담요송> <피크닉> 는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영어들도 잘한다. <피크닉>은 라이너스가 나오는 만화영화의 주제가처럼 귀엽고 마지막 곡은 트럼펫, 트럼본 등의 브라스를 차분하게 썼다.
꼭 ‘라이너스의 담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이런 계통의 모던 록 스타일이 댄스쪽말고 멜로디를 앞세우는 가요 진영에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미 불독맨션이나 델리 스파이스가 이런 멜로디들을 대중에게 익숙하도록 해주었으므로 대중적으로도 친숙하고, 듣기에 부담도 별로 없고 스타일도 쿨해서 여러모로 향후 상업적 가능성까지 갖춘 스타일인 것 같다. 앞으로 그 발전을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우후죽순격으로 이런 유의 밴드들이 나오긴 하는데, 글쎄, 찬바람 불면 또 다 사라지려나.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