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론(35)이라는 이름은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굵직한 페스티벌만 보더라도 프랑스 안시, 일본 히로시마와 디지털 콘텐츠 그랑프리,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이탈리아 카툰스 온더 베이, 미국 시그래프, 브라질 아니마 문디와 그 밖에 각종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에서 입상 및 본선에 진출하며 주목받고 있다.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만든 <클락>(1998)이 18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출품돼, 7곳에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 이래 <엔젤>(2000), <아이 러브 피크닉>(2002) 등 만드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세상에 드러난 작품은 세편이지만 지금까지 만든 작품이 수십편쯤 돼요.”
“수십편?”
"평소 틈틈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짤막한 작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항상 관객을 생각하며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쌓여진다고 생각해요.”
경성대 응용미술학과 88학번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컬리지에서 컴퓨터 아트를 공부했다. 이어 <스타워즈> <스타쉽 트루퍼즈> 제작에 참여한 티핏스튜디오에서 경험을 쌓았다. 유학 시절 픽사 기술진이 개설한 과목을 들으며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요즘 관객 수준이 얼마나 높아요. 그래서 저는 작품을 만들면서 관객과 지적 싸움이랄까, 두뇌게임을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 것인지 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관객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긴장과 재미를 주는 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만의 강점 아니겠습니까.”
현재 70분짜리 3D애니메이션 ‘머그 트레블’ 제작에 한창이다. <아이 러브 피크닉>에 나왔던 북극곰 빼꼼이를 비롯해 각종 캐릭터들을 이용해 만드는 본격적인 극장용이다. 네살부터 일곱살까지 전세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크리스마스용 작품.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현재 30% 정도 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8월17일 폐막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가진 투자설명회에서는 미국 최대의 게임회사인 EA 관계자 등의 극찬 속에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로 부각됐다.
EA의 수석캐릭터 아티스트인 제니 류는 “이 정도 예산으로 이만한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왔다”며 “임 감독은 더 큰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머그 트레블’은 순제작비가 16억5천만원가량 들어갑니다. 미국 기준으로 볼 때 정말 저예산 작품이죠. 문제는 그런 예산으로 해외 시장에서 성공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죠.”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 한 일이 바로 사람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두개의 회사를 거치면서 ‘아카데미2`를 만들어 애니메이터 양성에 나섰다. 한기에 4∼6명 정도 뽑아 현재 7기생을 교육 중이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곤란합니다. 자기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죠.”
그렇게 고르고 추려낸 사람들과 함께 비지땀을 흘리며 신작 제작에 나서고 있는 그다. “재미없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형모/ <중앙일보> 메트로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