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해가 보일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어둡고 습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낮고 답답한 하늘이 본모습이라고 믿었다. 가끔 높고 푸른 하늘을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리만 컸고, 구름을 밀어내는 방법도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조용히 맑은 하늘을 보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열번의 숟가락이 한 공기의 밥을 만들 듯, 작은 노력이 모여 맑고 화창한 하늘을 만들어냈다. <십시일反>을 읽은 감상이다.
굴레를 벗어나
<십시일反>은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고 창작과비평사에서 편집, 출간한 만화책이다. 박재동,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남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 모두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만화의 모양은 참여한 작가들의 개성만큼 각각 다르다. ‘한겨레그림판’에서 보여준 박재동식 한칸만화도 있고, 1∼2페이지를 활용한 손문상의 만화도 있다. 홍승우, 홍윤표는 짧은 호흡에서 최대한의 이야기를 비벼내는 만화를 보여주었으며, 이희재와 유승하, 최호철, 조남준, 장경섭은 정통 단편의 맛을 보여주었다. 이 각각 다른 작가 10명의 만화는 하나같이 남을 배척하고 경쟁하며 따돌리고 괴롭히는 마주하기 싫은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만화를 보며 만화의 이야기를 단지 만화의 이야기로 한정짓고, 경쟁과 차별의 삶을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로 위안하지만 결국 그 굴레는 나의 몫이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자화상이다. 이 자전적 만화는 매우 괴롭게 나를 발견하게 한다.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만화를 통해 나와 대화한다. 이것은 분명한 변화이자 새로운 가능성이다.
대형출판사들로 형성된 주류 만화시장의 물량공세는 융단폭격을 하듯 만화시장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시스템을 베낀 대형출판사들이 등장한 이후 일률적으로 정비된 출판시스템은 중견작가들을 조기 퇴출시켰고, 비주류만화의 싹을 꺾었으며, 독자들의 입맛을 길들였다. 흉내낸 거죽은 화려했지만, 알맹이는 썩어들어갔다. 속이 썩어버린 화려한 거죽은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잡지를 중심으로 정착된 주류 만화시장은 작가들에게 필연적으로 일정한 원고 생산능력을 요구한다. 주간이나 격주간 단위로 적으면 매호 24페이지에서 많으면 48페이지를 생산해야 한다. 이를 다시 월간 단위로 모으면 적지 않은 페이지가 나온다. 이러한 생산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작가들은 화실을 만든다. 일정한 공간을 임대하고, 장비를 구비하며, 협업자를 구한다. 안정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지 지속적인 잡지 연재가 가능하다. 또한 이 잡지 연재 분량은 작가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만화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이면서도 작가 1인에 의해 창작의 전 과정이 완벽하게 제어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만화를 만드는 전 과정을 통해 작가는 완벽한 창조자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그 즐거움은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져 다른 대중매체에서 볼 수 없는 작가의 아우라를 누리게 한다. 하지만 잡지 시스템은 만화의 개인적인 창조성 대신 시스템의 효율성을 요구했다.
출판쿼터제를 꿈꾸며
<십시일反>은 효율적인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다. 10명의 작가 중 대형출판사의 만화잡지에 연재를 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홍승우 1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신문이나 시사주간지, 웹 등 만화를 발표할 수 있는 여러 공간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데 주력해 카탈로그처럼 이 작품 저 작품을 모은 것이 아니라 10명의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완성한 작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비빔툰>의 낯익고 익숙한 호흡을 계승한 홍승우의 만화나 개를 소재로 두편의 연작을 발표한 조남준의 만화는 기획만화가 지니기 쉬운 메시지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실린 만화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책의 모양은 아쉽지만 ‘창비’가 시작한 첫 번째 만화라는 점에서, 꽤 오랜 시간 자기 세계를 개척한 10명의 작가가 보여준 10편의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작은 노력이 황폐한 만화시장과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는 역시 황폐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만화 <십시일反>은 소중하다.
다소 엉뚱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국고지원으로 새로운 개념의 만화잡지를 창간해 운영하는 것과 일본 만화의 총량규제(출판쿼터제)는 유통의 혁신과 함께 한국 만화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전자가 허황한 꿈이라면, 후자는 가능한 이야기다. 브라질의 경우 1983년부터 전체 만화책의 50%는 자국의 작가들이 그리도록 의무화했으니까. 이명석 /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