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진정한 국제화란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이 지난 8월12일부터 17일에 이르는 엿새간의 항해를 마쳤다. 격년제에서 연례 행사로 바뀐 올해 SICAF의 밥상은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양이 고루 갖춰진 느낌.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단편들의 독식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아르헨티나, 독일, 러시아, 호주 등지에서 다양한 중·단편들이 공수됐으며, 그중에서도 영국 강세가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일본의 작가들이 역차별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인기 TV시리즈물 <카우보이 비밥>의 극장판 <천국의 문>과 <로버트 카니발>의 우메즈 야스오미 감독이 직접 참여한 <메조포르테>의 상영은 영화제 기간 중 단연 핫이슈였다. 28개국 134편의 신작 애니메이션이 출품된 영화제는 물론이고, 아시아 신인감독전, 심사위원 특별전, 이탈리아 카툰스 온 더 베이 풀시넬라 수상작 등의 기회전 역시 전에 없는 호응 속에 막을 내렸다.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메조포르테>의 우메즈 야스오미, <반딧물의 묘>의 다카하다 이사오, <천녀유혼>의 서극, <애니 매트릭스>의 피터 정, 샌드애니메이션의 대가 페렝 카코 등은 올해 서울을 찾은, SICAF의 해외 게스트들.
올해 서울시로부터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은 주최쪽이 이렇듯 해외 인사 초청과 다양한 국적의 작품 공수에 공을 들인 이유는 다름 아닌 아시아권 제패를 위해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는 차치하고라도 히로시마와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로 대표되는 아시아권 영화제 가운데서 최고로 거듭나고자 하는 계획은, 지난 3년간 부천 복사골에서 차분하게 경력을 쌓아오던 추혜진(34) 프로그래머를 서울로 불러들이는 것에서부터 실행됐다. 이미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에서 작품 선택 감각과 수급력을 인정받아 온 추씨는, 올해 2월 SICAF에서 함께 일할 것을 권유받은 뒤 무엇보다 관객의 평준화된 미각을 일깨우는 길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해외 작품 프로그래밍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고민의 초점을 맞춘 것은, 무엇이 영화제를 국제화하는 길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외국 작품 몇개 빌려다가 트는 것이 국제화의 진의라고 보긴 힘들었고, 그가 선택한 답은, 세계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서울 시민이 알게 하는 것이다.
실사와의 합성 그래픽이 동원되는 것이 유럽쪽 애니메이션의 추세라고 한다면, 일본은 더욱 양극화의 방향으로 치닫는 실정. 3D를 이용하여 실사에 더욱 근접하려는 그래픽의 향연이 한축이라면 여전히 손으로 그린 정교한 만화가 사라지지 않고 활성화되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한국은 지금 다양한 기술적 실험이 동원된 대작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단편들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이다. 우리와 세계의 현주소를 묻는 SICAF의 고민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글 심지현·사진 이혜정
추혜선 | 1970년생 | 2000∼2002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프로그래머 | 2003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