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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일본애니메이션 거장 다카하다 감독
2003-08-19

“미야자키는 천재지만 난 현실주의자”

우리에겐 70년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빨강머리 앤〉 정도밖에 정식 소개된 작품이 없지만, 다카하다 이사오(67,사진)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일군 장본인이자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끄는 거장이다.

〈반딧불의 묘〉(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헤이세이 너구리전쟁 폼포코〉(1994), 〈이웃의 야마다군〉(1999)에 이르는 그의 극장 장편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가 단순히 미야자키의 파트너가 아니라 미야자키와는 또다른 세계관을 지닌 작가임을 인정할 것이다.

특히 인간의 자연개발에 맞서 둔갑술을 이용해 막다가 실패해 영원히 인간으로 변해 살고 있는 너구리들의 이야기 〈헤이세이…〉는 염세적일 만큼 비관적이면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는 자유주의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지난주 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강연을 위해 1박2일로 방한한 그는 몹시 순하고 겸손해 보였지만, 자신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땐 단호하고 힘있었다. 다카하다 감독은 자신을 “현실주의자”라 불렀다.

“이상주의자는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야자키도 언제나 괴로운 얘기만 하지 않냐.”(웃음)

1945년 종전 때 9살이었던 그는 “일본이 신의 나라라는 믿음도 그리 깊지 않았고, 어제까지 다른 이야기를 하던 학교 선생이 갑자기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등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걸 보면서 자란 내 세대에게 가치는 상대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기에 종전 직후 고아가 된 오누이의 비극적 죽음을 담담히 그린 〈반딧불의…〉 같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이 일본의 피해자의식을 부추겼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그는 “그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싶다”라면서도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그런 비판을 한다면 이해한다”고 답했다. 그는 만주에서 중국인을 노예처럼 부리게 된 일본인의 ‘일상’을 다룬 작품을 기획했지만, 천안문 사태로 무산되기도 했었다. “군사적 협력말고도 일본이 평화 공헌할 방법은 많다”며 최근 일본사회의 우경화 움직임을 비판할 땐 현실주의자이면서도 평화주의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다카하다 감독은 미야자키와의 차이점을 묻자 “그는 천재이고 난 천재가 아니다”라면서도 “미야자키는 재능이 많고 재미있지만 그런 식으로 될까”라며 유보조건을 달았다. “만들 때마다 서로 비판한다. 서로 다른 걸 만들려고 하니까 비판은 당연하다”라는 그는 좋은 애니메이션의 조건으로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작품”을 꼽았다.

다카하다는 요즘의 일본 애니가 “감동적이다, 위안을 준다는 평만 들을 뿐”이라며 비판했다. 최근 프랑스의 애니 〈키리쿠와 마녀〉를 일본극장에 거는 일에 전력을 다한 것도 “일본 작품엔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한국 애니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짧은 일정에서도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 감독과 3시간 가까이 만난 이 노감독은 흥행이 안 되었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애니메이션사에 남을 작품이니 그런 데 개의치 말고 작품을 만들어주길” 당부했다고 한다. 최근 신작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으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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