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hunter 1986년,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윌리엄 피터슨
장르 스릴러
파워오브무비 명불허전
91년, 조너선 드미가 연출한 <양들의 침묵>의 히로인, 한니발 렉터 박사는 아마 90년대 이후 등장한 연쇄살인마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일 것이다.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의 범죄자들이 대개 사회에 협력할 수 없는 사이코이거나 변태성욕자와 같은 ‘타자성’의 개념으로 존재해왔던 것에 비해, 한니발 렉터의 캐릭터는 조금 특이하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이미지를 전담해온 노동계급의 이미지를 떠난 한니발 렉터는 풍부한 교양과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한 사회적 인텔리에서 추출된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의 심리와 행위까지 읽어내는 그의 비상한 능력은 영화 <양들의 침묵>을 세련되면서도 긴장감 있는 심리적 스릴러영화로 완성시켰다. 결국 90년대 스릴러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였던 한니발 렉터는 최근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그 후편 <한니발>에서 더욱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로 다시 등장했다. 물론 전편을 압도한 한니발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밀고 당기는 심리적 긴장감과 인간적 교감의 매력을 상실한 채 마치 지옥의 사자를 방불케 하는 한니발의 과장된 악마적 캐릭터만 남아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니발 렉터 박사가 등장하는 또 한편의 영화가 있다. 우리에겐 <히트> <인사이더>와 같은 개성있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만 감독이 86년에 연출한 <맨헌터>. 얼핏 싸구려 호러영화 같은 영화의 제목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간과되는 수난을 겪긴 했지만, 사실 한니발 렉터를 등장시킨 가장 첫 번째 영화인 셈이다. 원작은 토머스 해리스가 한니발을 등장시킨 소설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레드 드래곤>. 후편들이 FBI의 여성 요원, 클라리스와 한니발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것이라면, <맨헌터>에서는 한니발을 검거한 월 그레이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니발 사건 이후, 가족과 조용히 살고 있는 그레이엄에게 FBI의 수사의뢰가 들어온다. 미모의 여성만을 골라 엽기적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엄은 사건의 단서를 찾기 위해 한니발을 찾아가지만 오히려 모호한 수수께끼만 던져질 뿐이다.
후속작들이 한니발의 엽기적인 행위로 이미지를 채워나가는 반면, <맨헌터>는 사건을 풀어가는 그레이엄의 건조하면서도 편집증적인 심리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래서 화면은 시종 광기와 공포를 상징하는 흰색과 푸른색의 극단적 대비의 미장센으로 채워진다. 때문에 후속작들에서 보여지는 역동적인 편집과 경악스런 공포감은 이 영화에서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심리적 동일시를 유발하는 범죄자와 형사간의 긴장감과 영화적 비주얼은 오히려 훨씬 매력적이다. 같은 인물이 세명의 감독에 의해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창출되는가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정지연|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