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드 재즈 모음집
지난 10년간의 록음악계의 언어를 지배한 가장 영향력 있는 낱말인 ‘얼터너티브’(alternative)는, ‘대안’을 찾는다는 정치적 행위와 결부되어 록음악의 장르를 다시 젊은이들의 생활양식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이 낱말은 그 이전의 팝이 ‘텍스트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점은 간과된 듯하다.
지난 10년간을 풍미한 또 다른 지배적 낱말인 ‘애시드’(acid)가 바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작용한 ‘얼터너티브’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애시드’는 원래 환각제(LSD)의 이름이다. ‘애시드 록’이라는 말은 ‘사이키델릭 록’의 동의어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낱말이 90년대적인 ‘애시드 재즈’의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애시드 록’ 같은 일대일 대응식 조어법(즉 약을 먹고 하는 록이라는)의 순진함을 벗어나는 복잡함을 지니고 있다. 우선 90년대식 ‘애시드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70년대의 ‘애시드 하우스’라는 장소가 결부되어야 한다. 약을 팔며 음악도 틀어주는, 주로 흑인가에 있던 이런 B급 바에서 활발하게 연주되었던, 약 먹고 노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반복적이고 사이키델릭한 훵크(funk)-재즈 복합체가 1990년대식 애시드 재즈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다고 그 장소에서 연주되던 음악이 그대로 ‘애시드 재즈’인 것은 아니다. 1990년대식 애시드 재즈는 애시드 하우스의 B급 재즈 LP들을 재발견하고 그것들을 집적하여 텍스트화하는 행위를 거쳐 태어난다.
최근에 나온 모음집 는 1990년대 영국에서 발흥한 이러한 ‘애시드 재즈’의 대표곡들을 두장의 CD에 담고 있다. 인코그니토, 브랜드 뉴 헤비스, 자미로콰이, 워크샤이, 마세오 파커, 모노, 코드로이, US3, 제임스 테일러 쿼텟 등 이 방면의 대표자들을 뽑아놓았다. 물론 이들이 ‘애시드 재즈’의 재텍스트화에 이르게 된 경로는 다양하다. 먼저 재즈, 특히 기존의 퓨전 재즈에서 영향받은 사람들이 힙합과의 연계를 모색하며 대안 찾기에 나선 경우(US3, 코드로이), 훵크와 쿨한 퓨전 재즈의 혼합을 원한 경우(브랜드 뉴 헤비스), 또 클럽 하우스나 드럼 앤드 베이스쪽, 다시 말해 테크노쪽에서 재즈쪽으로 샘플링을 따들어가다가 애시드 재즈라는 재텍스트에 이른 경우 등 굉장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애시드 재즈의 영역에 합류한 수많은 뮤지션들이 있다. 는 그러한 뮤지션들의 다양한 경로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적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곡마다 붙여진 친절한 소개의 말도 이 장르의 초심자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얼터너티브는 장르가, 혹은 생활이 더이상 스트레이트하게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전복할 힘을 잃는 순간 작용하는 역설적인 전복의 힘으로 발생한다. ‘대안’은 과거의 것을 텍스트화한 다음 현재를 그와 연계하여 ‘재텍스트화’하는 작업을 전제로 하는데, ‘애시드 재즈’가 바로 그러한 재텍스트화의 좋은 사례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