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한 아들 수인과 나름대로 정의로운 변호사 남편, 까탈스러운 시어머니(윤여정)와 병상에 누운 시아버지(김인문)를 둔 가정주부 호정(문소리). 얼핏 평범해 보이는 집안이지만, 남편 영작(황정민)은 젊은 애인 연(백정림)과의 섹스에 탐닉해 있고, 시어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나서 “생전처음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고백하며, 호정 역시 옆집 고등학생 지운(봉태규)과 심심풀이 ‘찐한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 안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던 영작의 차가 술취한 우체부 지루(성지루)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면서 이 가족은 아슬아슬한 균열을 넘어 붕괴의 순간을 맞는다.
■ Review<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을 잇는 임상수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바람난 가족>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혹은 감독 스스로의 ‘고해성사’ 같은 영화다. 사회적 우위를 계승받아 고의적이든 고의적이지 않든 폭력의 역사에 동참했던 ‘미성숙’의 남자들이, 길게는 60년 짧게는 30년을 참고 살아온 ‘성숙한’ 여자들에게 바치는 반성문인 것이다. 하여 이 영화 속 남자들은 등장부터 구덩이에 빠지거나, 무력하게 자기 뒤도 못 닦고 손발이 묶여진 채 마지막 기운을 뿜어대다가 걸레질로 ‘아웃’당한다. 쌍욕을 하며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손가락을 부러뜨린 뒤에도, 여자는 훌훌 털고 가벼워지는데 남자는 끝내 쏟아버릴 수 있는 순간을 저지당한다.
그러나 이 성실한 ‘자진납세’는 때때로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그랬던 것 처럼) 여성들을 지나치게 솔직하고, 이성적이고, 쿨하게만 그려내면서 현실과의 거리를 떨어뜨린 채 우상화시킨다. 하여 <바람난 가족>은 여성들의 전복성이나 도발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해방감과 동시에 막막함을 주는 이 영화의 결말이 아프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죄 많은 남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형량의 바로미터다.
감히 “배우의 영화”라고 부를 만한 <바람난 가족>은 <박하사탕> <오아시스>를 거친 문소리의 자신감에 <와이키키 브라더스> <YMCA야구단>을 거쳐오며 중량감 있는 주연으로 성장한 황정민의 호연이 더해지는 가운데 윤여정, 김인문, 봉태규, 성지루, 백정림 등의 탄탄한 조연들이 극에 무게감과 안정감을 더한다. 김우형 감독의 촬영은 슈퍼 35mm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실려 뼈대를 드러낸 붕괴가족의 앙상한 기운을 서늘하면서 과장되지 않게 그려낸다. 오는 8월27일부터 열리는 2003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베네치아60’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