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단순히 누군가를 부르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어떤 문화에서든 이름은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상들의 이름을 다시 후손에게 붙여주는 건 선조가 가졌던 힘과 지혜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다. 특권 계층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름과 성을 가지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건 그에 대해 일정 정도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슐라 르 귄은 이 테마를 가지고 ‘어스시의 마법사’란 고전 판타지를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튼튼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개똥이니 소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을 지어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게임을 하다보면 주인공 이름을 직접 지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처음에는 외모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냈지만 조금 지나자 귀찮아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 이름을 슬그머니 도용하기 시작했다. 실명으로 하면 왠지 어색해서 별명으로 한다. 키우는 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웬디’, ‘꼴레띠’, ‘프루동’, ‘순이’ 등 <삼국지>를 하면서 일가 친지가 총동원된 대군을 이끌고 가는 맛은 색달랐다. 물론 본인들은 모른다.
하지만 매번 이 사람 저 사람 이 개 저 개 끌어들이는 것도 번거로워졌다. 다음 단계는 이름을 하나 정해놓고 죽자사자 그 이름만 끌어대는 단계다. 내가 즐겨쓰는 건 남자는 수기(SugY), 여자는 프로기(Froggy) 또는 엘비라(Elvira)다.
그 유래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야 없겠지만 수기는 나, 프로기는 내 친구를 지칭한다. 그런데 <심즈>라는 게임을 하다가 집에 불이 나서 프로기가 타죽는 일이 일어났다. 정작 본인이야 그냥 재미있어했지만 워낙 소심하고 사서 걱정인 내 성격에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 끌어들인 게 엘비라다. 남자주인공이야 게임이 끝날 때까지 시련은 좀 있어도 큰일을 당하는 일은 없지만 여자주인공은 툭하면 남자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다. 그런 게임에서는 프로기 대신 엘비라가 등장한다.엘비라의 유래로 말하자면, 그냥 <엘비라 마디간>이란 영화가 떠올라서 지었을 뿐이다. 그 영화나 여주인공을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무심코 갖다붙였으니. 이번에는 ‘진정한 이름’의 주술과 전통에 반기를 들고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결합’이라는 현대 언어학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름, 그리고 이름을 지어준다는 행위가 정말로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기서 논할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에 직접 이름을 붙여주면 감정 이입이 잘된다는 건 확실하다. 대부분의 게임은 한번 지어준 이름을 바꿀 수 없다. 바꿀 수 있더라도 <파이널 판타지4>처럼 수십명의 똑같은 캐릭터 중 이름 바꿔주는 캐릭터를 찾아내는 것 같은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름짓는 건 신중해야 한다. 이름을 장난삼아 아무렇게 지었다가 영 그게 걸려서 다시 시작한 적도 있다.
어린 왕자는 장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캐릭터의 이름을 붙여주면 그 세계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를 그 이름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름을 붙여줘서 비로소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이름짓기의 차원을 한 단계 발전시졌다. <도키메키 메모리얼2>에서는 내 이름을 입력하면 음성으로 이름을 불러준다. 내가 그녀를 부르는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불러준다. 그리고 나는 그 세계의 일부가 된다.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