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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해변의 카프카>

하루키의 위대한 선물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2년,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발표했다. 7년 만의 신작에서 하루키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돼… 너는 귀를 기울이고 그 메타포를 이해하면 돼’라고 말한다. 그 세월 동안 바뀐 것이 없다는 것일까? 그건 전혀 아니다. 여전히 하루키는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는 미세하게 변화했다. ‘사물이 계속 훼손되고, 마음이 계속 변하고, 시간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계’에서 도망치기를 원하는 심정은 동일하지만, 결국은 돌아간다. 세계의 폭력성은 여전하지만, 돌아가서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된다.

<해변의 카프카>는 15살 생일을 맞은 소년의 가출에서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의 소년’이 되기를 원하는 그는, 자신의 이름을 카프카라 짓는다.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고, ‘부조리의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방황하고 있는 외톨이인 영혼’을 의미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이다. 카프카는 증오하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시코쿠의 한 사립도서관에 기거한다.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과거를 잃어버린 나카타는 고양이를 찾아주다가, 조니 워커라는 고양이 살해범을 만난다. 사악한 조니 워커를 죽인 나카타는 입구의 돌을 찾기 위하여 시코쿠로 향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두개의 상황이 번갈아 전개되는 형식이다. 나카타는 조니 워커를 죽였지만 실제 죽은 사람은 카프카의 아버지이고, 그 순간 시코쿠에 있던 카프카의 몸은 피로 얼룩진다. 그들의 현실은, 꿈은 서로 이어져 있다. ‘꿈속에서 책임은 시작’되고, 카프카는 아버지의 저주를 실현하게 된다.

그리스 비극은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인간을 선택한다. 그 비극성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사자의 결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의 장점을 지렛대로 해서 그 비극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간음한다’는 저주는, 카프카의 현실이 된다. 하지만 카프카는 세계의 끝에서 안주하지 않는다. 카프카는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법이 아니라 돌아가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는 길을 택한다. 마음속의 공포와 분노를 극복하고, 거기에 밝은 빛을 넣어 차가워진 부분을 녹이는 길을.

<해변의 카프카>는 그리스 비극과 일본의 고전문학 <겐지 이야기>의 생령(生靈) 등 다양한 모티브를 끌어들이며 풍성하게 진행된다. 하루키의 투명하게 울리는 문체는 더욱 깊어졌고, 환상과 현실을 유려하게 엮어내는 솜씨도 여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3년 동안,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것처럼 꾸준하게, 성실하게 전진해왔다. 그 성과가 <해변의 카프카>다. 혹시 전작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예단은 철저하게 무시해도 좋다. 나선형의 발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해변의 카프카>는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온 독자에게 주는, 위대한 선물이다. ‘인간의 모든 선악과 더불어 그 신성(神性)과 수성(獸性)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하루키의 야망을 즐겁게 확인할 수 있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