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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완전정복 3탄 - 걸작들의 탄생비화 [1]

지식검색소에도 없다, 걸작들의 탄생기<선셋대로>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까지, DVD가 알려주는 걸작의 탄생비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이 DVD로 속속 출시되고 있다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좀더 좋은 화질과 음질로 고전 명작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DVD라면 뭔가 더욱 특별해야 하는 것 아닐까. DVD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서플먼트의 존재. 서플먼트 덕분에 우리는 이 영화사의 걸작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해 알 수 있게 됐다. 영화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메이킹필름, 오디오 코멘터리 등이 영화의 탄생비화를, 영화사 속 위치를 알게 해준다. 물론, 문제는 있다. 고전영화 DVD에 풍부한 서플먼트를 싣는 것은 아주 최근에야 일반화됐고, 설사 서플먼트가 있다 해도 로컬화 과정에서 한글자막이 누락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판권문제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출시된 DVD 타이틀의 범람 또한 잠재적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DVD 출시사들도 학술적 가치마저 있는 서플먼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씨네21>이 다음 10편의 DVD를 소개하는 것은 걸작에 걸맞은 풍부한 사료를 담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 뛰어난 서플먼트가 담긴 DVD가 출시되기를 바란다는 차원이라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 DVD 타이틀을 출발점으로 삼자는 것이다. 혹시 또 아나. 몇년 뒤에는 DVD 1장으로 영화사를 공부하고 영화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지. 그럼, DVD를 통해 알게 된 걸작의 탄생비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 편집자

VOL1 | <선셋대로>

비웃음을 씹고 다시 찍은 명장면

Sunset Boulevard/ 1950년/ 감독 빌리 와일더/ 출연 윌리엄 홀든, 글로리아 스완슨, 낸시 올슨/ 출시사 파라마운트

<선셋대로>의 첫 시사회는 빌리 와일더 감독에게 최악의 순간이었다. 시체공시소에 놓인 윌리엄 홀든의 시신과 다른 시체들이 대화를 나누는 다소 황당한 첫 장면이 선보이자 극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낙담한 와일더는 상영관을 빠져나와 극장 안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를 지나치던 한 여성이 말을 건넸다. “저렇게 형편없는 건 처음이에요.” 그 말을 들은 빌리 와일더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그래요.” 이처럼 <선셋대로>의 메이킹 다큐멘터리에는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다시 찍게 된 과정이 상세히 담겨 있다. 결국 와일더는 이 시체들의 대화장면을 수면에 떠 있는 홀든의 시체를 수영장 바닥에서 찍은 듯한(실제로는 위쪽에서 거울을 이용했다) 장면으로 대체했고, 이는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게 됐다.

글로리아 스완슨과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인연도 흥미롭다. 애초 와일더 감독은 퇴락한 여배우 노마 데스먼드 역으로 글로리아 스완슨 대신 메이 웨스트를 생각했다. 대사수정을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성격으로 유명한 이 육체파 배우와의 협상이 결렬된 뒤 여러 명과 접촉하던 와일더는 스완슨에게 제의를 했고, 30년대 이후 시나리오를 받아본 적이 없는 스완슨은 제깍 출연을 결정했다. 퇴락한 무성영화 스타란 점에서 스완슨과 그녀가 연기할 노마는 똑같은 인물이었다. 한때 노마를 스타로 키워낸 감독이었고 첫 번째 남편이었지만, 이혼 뒤 그녀의 집사로 들어가 살고 있는 맥스 역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도 몰락한 감독이란 점에선 비슷한 처지였다. 실제로 스완슨과 스트로하임은 <켈리 여왕>(1929)에서 연출자와 여배우로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패했고 둘의 사이는 극도로 안 좋았다. 스완슨이 제작자이자 연인이었던 조 케네디(J. F. 케네디의 아버지)에게 “이 미친 감독과 일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20여년 만에 <선셋대로>에서 해후한 둘은 서로를 존중해줬다고 한다. <선셋대로>가 뿜어내는 묘한 광기는 이들 스러지는 영혼들이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데서 비롯된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 홀든이 ‘밀랍인형’이라고 조롱하는 스완슨의 무성영화 친구들은 실제 무성영화 스타였던 버스터 키튼, H. B. 워너, 안나 Q. 닐슨이었다.

VOL 2 |

배우는 이용하고 버린다

8 1/2/ 1963년/ 감독 페데레코 펠리니/ 출연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아누크 에메, 산드라 밀로/ 출시사 알토미디어

‘당신은 르네상스 미인인가요? 당신의 엉덩이는 첼로 모양인가요? 아래 시간, 아래 장소로 오세요.’ 을 준비하던 펠리니는 조연출이었던 리나 베르트뮬러 등과 함께 밀라노, 투린, 나폴리 등을 돌며 배우 선발 이벤트를 가졌다.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고 그 틀 안에 배우를 끼워맞추려 했던 펠리니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재밌는 일은 행사장인 광장에는 별별 희한한 여성들이 나타났지만, 정작 펠리니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펠리니는 배우들을 철저히 ‘이용’하기로 유명했다. 을 찍을 때, 그는 2권의 대본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배우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당일 촬영분이 무엇이며 얼마만큼인지 모르는 배우들은 매일같이 촬영장에서 대기 상태로 있으면서, 아주 조금씩만 자신의 출연분량을 알 수 있었다. 베르트뮬러는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들을 지옥 끝에서 스케이트를 타듯이 내몬다”고 말했다. 이 DVD의 오디오 코멘터리에서 펠리니의 친구이자 영화평론가인 기드온 바흐만은 통통한 몸매의 산드라 밀로의 예를 들어 “그는 캐스팅할 땐 배우의 특정한 모습을 영화 속에 보여주고자 하고 촬영이 끝나면 그 모습을 찾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버리는 것이다.” 산드라 밀로도 인터뷰에서 “나는 펠리니를 무척 사랑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17년 동안이나 애인으로 지냈는데, 그는 나를 한번도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가 에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은 비범한 능력 덕분이었다. 많은 배우들은 오히려 그에게 ‘이용’당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펠리니를 찾아가 그의 눈을 쳐다보면, 그도 협조적으로 웃으며 자신과 가깝다고 믿게 해주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한데 펠리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용당했다는 사실조차도 기뻐하게 만든다.”(바흐만) 펠리니는 주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항상 곁에 있고, 그들을 아끼고 상대방을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을 줬고,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그와 매우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펠리니가 배우들에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베르트뮬러의 말처럼 그가 “배우를 두려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VOL3 |

상처를 들여다보며 만든다

Les 400 Coups/ 1959년/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장 피에르 레오/ 출시사 알토미디어

“흔히 청소년기는 인생의 가장 좋은 때라고 하는데 내 경우는 나쁜 기억의 연속 뿐이다.” 가 트뤼포의 유년기 초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 작품 오디오 코멘터리가 흥미로운 것은 어릴 적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으며 초기 영화작업에서 동료로 일했던 로베르 라슈네이가 트뤼포의 실제 삶을 ‘증언’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인 앙트완이 트뤼포의 분신이라면, 그의 단짝 친구 르네는 라슈네이인 셈이다. 그는 트뤼포의 단편영화 <개구쟁이들>에서 프로듀서를, 에서는 제작부 일을 도와줬다.

라슈네이에 따르면 영화 속 앙트완은 트뤼포의 유년기와 거의 똑같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고, 어머니와 양부로부터 큰 사랑을 못 받았으며, 학교생활이 엉망이었던 것 말이다. 가방을 숨겨놓고 학교를 빼먹는다든가 영화관에서 산다든가 발자크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에피소드 또한 실제 트뤼포와 라슈네이가 겪었던 일들이다. “그는 우리 기억 속을 철저히 뒤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너 그거 기억해? 그리고 그건’이라며 과거를 떠올리곤 했다.”

물론, 트뤼포와 앙트완에겐 다른 면이 있다. 트뤼포는 앙트완처럼 불량스럽다기보다는 지적이며 진솔했고 감성적이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트뤼포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똑같은 인물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두 인물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역배우 장 피에르 레오의 존재 때문이었다. 훗날 누벨바그의 대표적 배우로 성장하는 그는 시작부터 달랐다. 이 14살 소년은 이미 개성이 강했고, 나름의 스타일이 있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앙트완의 심리상담 장면에서 트뤼포는 레오에게 대사를 주지 않았다. 다만 촬영 한달 전부터 이런저런 상황이니까 생각을 해보라고 일러둔 터였다. 촬영 당일, 트뤼포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트뤼포는 참을성을 갖고 말을 빙빙 돌리며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레오는 그때 떠오른 중요한 생각을 꾸며서 얘기했다. 는 ‘배우는 자기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감독의 확고한 생각과 이를 소화한 천재배우의 융합의 결과였다. 트뤼포가 레오를 굳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혹시 그에게서 자신의 상처를 엿봤기 때문은 아닐까.

VOL 4 | <이창>

당신은 왼쪽으로, 당신은 오른쪽으로

타이틀RearWindow/ 1954년/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출시사 유니버설

정보

커티스 핸슨 감독은 “문외한이 히치콕의 영화가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이창>을 보여줘라”고 말한다. 이 걸작은 핸슨의 말마따나 “히치콕의 모든 특성이 들어간” 영화다. 그중에서도 관음증은 매우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다루는 주제다. 이 DVD 서플먼트 중 메이킹 다큐멘터리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이 60년대 히치콕과 인터뷰하며 녹음했던 자료가 소개되는데, 히치콕은 “스스로를 관찰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관찰자라…. 물론이고 말고”라고 시원하게 답한다.

히치콕은 배우를 가장 잘 다룬 감독 중 하나로 알려진다. 날이 더워 베란다에 매트리스를 내놓고 자던 부부가 비가 들이치자 집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세트 사이의 거리가 멀어 배우들은 이어폰을 끼고 감독의 지시를 받았는데, 히치콕은 부부 중 부인 역을 맡은 배우에게 이어폰을 빼라고 지시했다. 남편에게 뭐라고 지시한 그는 이번엔 남편에게 이어폰을 벗으라고 한 뒤 아내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리고 촬영에 돌입했는데, 엉뚱하게도 두 사람은 매트리스를 들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결국 옥신각신하던 둘은 우스꽝스런 모양새로 창문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알고보니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연기를 지시한 것이었다. 물론 의도적인 것이었다. 히치콕의 딸인 팻은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영화를 만들어놓는다. 모든 장면을 다 구성한다. 그래서 정작 세트장에 가면 영화 만드는 게 지겹다고 했다”고 설명한다. 둔해 보이는 몸집과 달리 히치콕은 진정한 완벽주의자였던 것이다.

히치콕의 일화 하나. 보그다노비치는 히치콕의 아파트에 들렀다가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로비를 향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자 히치콕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정말 끔찍했어. 바닥에 피가 흥건한데,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더라니까.” 보그다노비치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와중, 히치콕은 “벽에도 피가 묻었는데, 그 친구가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섰고,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한데 히치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흩어진 뒤 보그다노비치가 대체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히치콕이 답했다.“뭐? 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내 엘리베이터용 이야기지.”

▶ DVD 완전정복 3탄 - 걸작들의 탄생비화 [1]

▶ DVD 완전정복 3탄 - 걸작들의 탄생비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