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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영화제 회고전에 부친 배창호감독의 ‘존 포드론’
2003-08-08

오는 22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는 특별행사로 ‘존 포드 회고전’을 마련했다. 존 포드(1895~1973) 감독은 모뉴멘트 밸리, 존 웨인 등 서부극의 아이콘을 만들어내면서, 이전까지 다분히 미국적인 이야기로 여겨져온 서부극을 세계적인 장르로 확장시킨 거장이었다. 서부극뿐 아니라 전쟁물, 전기영화, 사회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아카데미상을 6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역마차> <황야의 결투> <분노의 포도> 등 그의 대표작 몇 편이 70~80년대 텔레비전을 통해 국내에 여러차례 방영됐지만, 이번처럼 그의 영화 15편을 온전히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영화팬이라면 놓치기 아깝다.(상영작은 위 세 편을 포함해 <청년 링컨>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그들은 소모품이다> <아파치 요새> <리오 그란데> <웨건 마스터> <조용한 사나이> <태양은 밝게 빛난다> <모감보> <수색자>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일곱 여인들>) 청년시절부터 존 포드의 팬이었던 배창호 감독에게 존 포드에 대해, 또 존 포드의 영화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글을 청탁했다. 영화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배 감독은 흔쾌히 수락했다. 편집자

"존, 천상에서도 '인간'을 찍으시나요"

내가 태어나던 1953년 존 포드의 <역마차>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되었다고 한다. 영화광이셨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유년시절부터 많은 영화를 보게 되었고 유난히 서부극을 좋아했던 나의 기억 속에는 <아파치 요새>나 <기병대> 등의 존 포드 영화가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다. 은행원이셨던 아버지는 어린 나를 재우면서 ‘넓고 넓은 바닷가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자주 불러주셨고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나 구슬픈 가사와 아름다운 곡조에 엉엉 소리내어 울곤 했었다. 그 후 성년이 되었을 때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라는 이 미국민요의 제목이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의 원제목임을 알게 되었고, 주인공 헨리 폰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하고 먼 하늘 아래 말을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이 애창곡이 흘러나올 때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다.

존 포드라는 감독을 정말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 시간에 방영되었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라는 영화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시민 케인>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영국 웨일스 지방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어느 광부 가족에 대한 추억을 그린 영화인데, 흑백화면으로 펼쳐지는 꿈결같은 영상과 서정성이 당시 영화감독 지망생이던 젊은 나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후일 감독이 되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영화를 만들 때 원작에도 없는 광부의 삶을 덧붙인 것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데뷔 때부터 한동안 소설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소설의 원작을 각색할 때 자주 참조하게 된 영화가 존 포드가 만든 존 스타인벡 원작의 <분노의 포도>였다. 현실을 고발하는 원작의 인위적인 결말부분을 과감히 삭제해 버리고 방랑자로서의 인생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내는 존 포드의 보편성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분노의 포도>는 신인감독 시절의 연출 교과서 역할도 하였는데 언제나 절제를 잊지 않는 카메라의 구사와 빛과 어둠의 대비, 그리고 조형적이면서 서정적인 영상미의 표현법 등을 이 영화로부터 배울수 있었다. 그 후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허리케인>, <모감보> 등의 존 포드 작품들을 보게 되면서 센티멘탈리스트로서의 나의 정서적 기질과 인간의 선성(善性)을 지향하는 따스한 관점이 존 포드와 닮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1987년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황진이>가 소개되었을 때 미국의 어느 평론가가 <황진이>에서 어딘지 존 포드 영화의 체취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사극 <황진이>에서 존 포드 영화의 느낌을 발견하는 이 평론가의 성찰력이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존 포드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선이 굵고 폭이 넓은 인간성에 놀라곤 했다. 그의 대표작 <수색자>에서 북군을 지휘하는 주인공에게 남군의 어린 병사가 사로잡힌다. 주인공은 적군 어린병사의 엉덩짝을 몇 대 갈려주며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으라면서 돌려보낸다. <아일랜드의 연풍>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 마찰을 일삼던 구교와 신교 신도들이 힘을 합쳐 곤란에 빠진 구교 신부를 도와준다. 이렇듯 전쟁터에서 적군 병사를 살려보내주거나 아일랜드 같은 나라에서 신구교도가 상대방을 돕기 위해 힘을 합하거나 하는 설정은 리얼리티를 초월한 존 포드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1956 <수색자>, 1953 <모감보>

<역마차>에서 지명수배범을 보안관이 스스로 도망시켜주거나 <허리케인>에서 주인공의 탈출을 총독이 방관하는 장면 등은 인간에 대한 애정 없이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장면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섬세함은 부족하더라도 대신 감독의 품성에서 배어나오는 서정성의 향기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무성영화시절부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영화를 만들어온 존 포드는 감독생활의 마지막 무렵 <샤이언>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 선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그의 서부극에서 악역으로만 묘사되었던 원주민들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만들어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지난 겨울부터 <길>이라는 제목의, 떠돌이 대장장이의 삶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우연히 다음과 같은 존 포드의 일화를 읽게 되었다. 존 포드가 즐겨찾던 로케이션 장소인 모뉴멘트 밸리에 날씨가 잔뜩 찌푸려 촬영이 어려운 조건임에도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들과 리허설을 계속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카메라맨이 이 궂은 날씨에 무엇을 찍을 수 있겠냐며 존 포드에게 불평을 터뜨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을 찍으려고 하지. 그건 바로 사람의 얼굴이야”

그렇다. 나는 존 포드로부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