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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카우보이> 감독 존 슐레진저(John Schlesinger) 별세

“다음 세상에서는 건축가를 할까”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감독 존 슐레진저가 향년 77살을 끝으로 세상을 등졌다. 존 슐레진저는 그의 유작 <넥스트 베스트 씽>의 촬영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3년간 쇠약한 육체에 시달렸고, 결국 지난 7월25일 미국 팜스프링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1926년 런던에서 소아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존 슐레진저는 10살이 되면서부터 영화연출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영화뿐 아니라 연극과 미술에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는 연극을 했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배우를 했다. 1952년에 <스타피쉬>를, 1958년에 <이너선트 아이>를 만들면서 단편 경력을 쌓았고, 1962년에는 그의 첫 번째 극영화 데뷔작인 <어떤 사랑>(A Kind of Loving)을 연출했다. <어떤 사랑>은 당시 영국 젊은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사실주의적인 필치를 보여주었다. 1960년대를 시작으로 존 슐레진저는 영국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이어가는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1965년작 <달링>(Darling)은 줄리 크리스티를 주인공으로 그 당시 영국에 팽배했던 계급갈등의 구조를 코믹한 방식으로 질타했다. 이후, 1967년작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Far from the Maddir Crowd)를 끝으로 존 슐레진저는 미국에서 영화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 <미드나잇 카우보이>(Midnight Cowboy, 1969)는 미국에서 그가 연출한 첫 번째 영화였고, 또한 그의 필생의 역작이었다. 존 슐레진저는 텍사스에서 뉴욕으로 흘러들어온 시골 청년(존 보이트)과 뉴욕의 절름발이 사기꾼(더스틴 호프먼)의 관계를 현대 미국의 초상으로 그려내어 흥행과 작품성 둘 모두에 성공했다. 존 슐레진저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시대의 영혼에 조화한 감독”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미드나잇 카우보이>는 감독의 게이 성정체성을 드러내며 “히스테리컬하지도 않고, 우스워 보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동성애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었다. 그뒤, <사랑의 여로>(Sunday, Bloody Sunday, 1971), <부서진 세월>(The Day of the Locust, 1975), <마라톤 맨>(Marathon Man, 1976)을 만들어 날카로움을 유지했지만, 작품의 역량은 그뒤로 하향의 길을 걸었다. 결국, 마돈나와 루퍼트 에버렛을 주인공으로 한 평범한 코미디영화 <넥스트 베스트 씽>(2000)이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배우들을 잘 다루는 감독으로 그들 사이에 남아 있다. 작품 안의 캐릭터로서 잘 다룰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자애롭게 보살폈다. 그래서 <양크스>(Yanks)에 출연했던 로버트 레드퍼드는 “모든 배우들이 언제나 함께 일하기를 원했던” 감독이라고 회상하고, 더스틴 호프먼은 “내 일생의 가장 흥분된 경험”이었다고 술회하고, <어떤 사랑>의 앨런 베이츠는 “이채로운 그의 경험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는 모든 배우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다음 세상에서는 건축가가 될 것”이라던 존 슐레진저가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글 정한석·사진제공 SIG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