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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받힌 액션,태연한 응대.<올드보이> 촬영현장
박혜명 2003-08-06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지난 6월30일과 7월30일, 두 차례 현장을 공개했다. 영문도 모른채 15년간 사설감옥에 갇혔던 남자가 자신을 가둔 인물을 찾아가 복수하는 이야기인 <올드보이>는 일본의 동명만화가 원작인 작품. 박찬욱 감독은 얼핏 <복수는 나의 것>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를 전작과 전혀 다른 영화라고 강조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 건조한 스타일과 정반대되는 풍요로운 스타일의 영화이며 과잉의 영화”라는 것이다.

6월30일 공개한 파주 아트서비스 세트장 내 촬영장면은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최민식이 연기하는 오대수가 자신이 갇혔던 감방을 찾아가 격투를 벌이는 이날 촬영에서 최민식은 장도리 하나를 들고 십여명에 이르는 건달을 물리친다. 하지만 오후 2시 무렵부터 준비에 들어간 액션장면 촬영은 2시간이 흘러도 별 진척이 없다. 수십번 리허설을 거듭하는 최민식의 온 몸은 금방 땀에 젖었고 한차례 리허설이 끝날 때마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아, 정말 나이 먹으니까 못하겠다.” 하지만 현장을 지켜보면 나이탓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액션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십번 되풀이되는 연습은 보는 사람도 힘이 들 정도다. 최민식과 무술연기자들이 지르는 비명과 악에 받힌 소리가 세트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7월30일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진행된 두번째 촬영현장은 오대수가 자신을 가둔 인물 이우진(유지태)과 대면하는 장면. 32층짜리 고층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실내로 설정된 세트는 지난 6월30일 촬영한 사설감옥 세트와 대조를 이룬다. 탁한 쑥빛 벽과 메탈 소재의 소품들로 채워진 이 메마른 공간에서 오로지 오대수라는 인간에게 집중하는 이우진 역의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와 정반대의 이미지다.

악을 품고 찾아온, 어쩌면 자신을 죽이려들지도 모르는 인간을 맞이하면서도 그의 몸짓엔 흐트러짐이 없다. 커프스를 채우며 태연한 말투로 오대수를 어른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아마 유지태의 변신은 <올드 보이>가 관심을 끄는 또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올드 보이>는 현재 70% 가량 촬영이 진행된 상태이며 10월말께 개봉할 예정이다. 투자 및 배급을 맡은 쇼이스트의 창립작품이고 에그필름이 공동으로 제작했다. 사진 오계옥·글 박혜명

♣ 벽 한켠에 동일한 두께의 크고 작은 액자 서른여개가 걸려 있고, 모두 같은 인물의 사진이다. 우진의 집을 찾아온 대수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이것들을 들여다보다가 그중 하나를 우진 앞에 들어보인다. (사진왼쪽) ♣ 오대수를 맞이하기 위해 단장 중인 우진. 넥타이핀을 꽂는 장면을 촬영하다 말고 유지태가 넥타이를 고쳐매고 있다. 완벽히 빗어넘긴 머리스타일과 고급스런 흰셔츠, 검고 곧게 흘러내리는 정장바지 등 우진은 외모상으로 더이상 흠잡을 구석이 없는 인물이다.(사진 오른쪽)

♣ 107평짜리 펜트하우스를 재현한 세트. 여덟개의 기둥이 지지하고 있는 내부에는 ㄱ자 형태의 초록빛 수로까지 깔려 있다. 그러나 호화로운 집에 으레 있을 법한 욕실이 없다. 박찬욱 감독은 “이곳은 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진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유리박스가 다름 아닌 샤워실이다.(사진 왼쪽) ♣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가 “과잉의 영화”일 거라고 말한다. 6월30일 찍은 액션장면의 콘티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게 한다. 정교하게 나눈 숏은 액션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유력한 방법이다.(사진 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