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은 지하철에서 아이들의 주검을 목격한 뒤로 이상한 환상에 시달린다. 신혼집 식탁에 그 아이들의 귀신이 출몰하는 것.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 정원은 우연히 만난 기면증 환자 연(전지현)이 자신처럼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알고 도움을 청한다. 연을 통해 정원은 기억 속에 지워져 있던 끔찍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 Review그 식탁엔 온기가 없다. 가족의 단란한 한때, 따끈한 음식에서 김이 솟아나고, 두런두런 이야기와 웃음이 피어나야 할, 그 식탁에서 정원은 차라리 혼자이고 싶었을 것이다. 스쳐 지나간 애들의 주검이, 그 환영이 식탁을 지배하면서부터 그는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스위트 홈’의 신성한 환상이 조각나는 순간, 그렇게 의 공포는 입을 연다.
“내겐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산 자가 일상에서 죽은 자를 마주치며 혼란에 빠지는 이야기는 호러나 스릴러에서 제법 익숙한 소재가 돼 있다.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류의 공포와 반전을 품었을 것이라는 예상은, 그러나 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다. 은 섬뜩한 공포의 순간들을 품은, 슬픈 드라마라는 편이 옳다. 아파트촌을 감도는 녹회색의 스산한 공기, 잠든 듯 죽어 있는 아이들의 늘어진 몸, 지상으로 추락하는 위층 여자의 미소, 잃어버린 기억의 전모, 믿음을 기대할 수 없는 관계, 삶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더라는 비극.
귀신을 본다는 것은 정원과 연을 이어주는 사건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어떻게, 그런 능력(또는 강박)을 갖게 됐느냐의 문제.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타인의 과거를 읽어내는 능력 때문에 불행해진 여자 연이다. “사람들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 연의 입을 빌려 말하는 이수연 감독은 <물안경> <라> 같은 단편에서 거듭 다뤄온 ‘성장’의 테마가 품은 비극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자신의 가정을 꾸리려던 순간, 정원의 끔찍한 가족사가 되살아난 것, 그 타이밍은 우연이 아니다. ‘인생의 관문’을 제대로 통과하는 일은, 절연했던 기억, 그 끔찍한 상처를 인정할 때만 가능해진다고, 감독은 말한다. 더러는 늘어지고, 더러는 불친절하기도 하지만, 은 모처럼 고집있고 재능있는 이야기꾼을 만났다는 기쁨을 선사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