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자료 꽃단장해 대중 속으로"
92년부터 <한겨레>에 영화비평을 실어온 이효인(43) 전 경희대 교수가 한국영상자료원장(차관급)이 됐다. 영화계나 문화계 원로에 대한 대우 차원에서 임명해온 이 ‘예우성 보직’을 그에게 맡긴 건 문화부 차원 뿐 아니라 새 정부 전체로 볼 때도 주목할 만한 개혁적인 인사이다. 이 신임 원장은 85년 서울영화집단에 들어가 문화운동 차원에서 영화일을 시작한 문화계 운동권 인물이다.
92년 평론을 시작한 뒤에는 정성일, 이정하 등과 더불어 당시 영화평론의 부흥을 주도했다. 또 독립영화계에 몸담으면서 계간 <독립영화> 편집장을 맡았고, <한국영화 역사 강의1> <영화여 침을 뱉어라> <영화미학과 비평입문>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등의 책을 펴냈다. 지난 29일부터 출근을 시작해 이틀째인 30일 만난 넥타이 차림의 이 원장은 어느새 공무원다워 보였다.
-필름자료 1만3천여점, 비디오테잎 10만4천여점에 이르는 영상자료원은 일반인들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임명장 주면서 두마디 했다. 영상자료원 내부는 어떻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볼 때는 너무 낯설고 생기가 없으니 그걸 살리자는 게 하나이고, 문화부가 돈 대주는 시대는 지났으니 스스로 벌어서 써야 한다는 게 두번째였다. 와서 보니까 내부적으로 여러 사정이 있지만, 어쨌든 외부인들에게 사무적이고 낯설게 비춰지는 걸 뚫고 나가려는 마인드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반인들의 바램은 쉽게 볼 수 없는 좋은 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넓어졌으면 하는 걸텐데.
=지금까지 자료원은 아카이브 기능만 해왔다. 이게 가장 본질적인 기능이긴 하지만, 거기에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시네마테크 기능을 활성화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중을 찾아가야 한다. 몇해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베를린영화제에서 했더니 인기가 좋아, 세계투어를 했다. 한국영화도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고, 다른 나라와 교환상영도 가능하다. 큐레이터 시스템을 도입해서 개발해 나갈 거다. 또 저작권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필름마다 저작권 보유자와 “이런이런 용도를 위해 틀 거고, 그때마나 얼마씩의 저작권료를 낸다”는 식의 계약이 돼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안 돼있다. 지금 숙원사업이다.
-상영관 문제는.
=지금 자료원 자리(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내)는 지리적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 그렇다고 별도의 자료원 소속 상영관을 만들기보다 구청이나 박물관 등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얼마전 성북구청에서 문화관을 자기 예산으로 만들어 곧 완공된다며, 상영할 프로그램을 부탁한다고 찾아왔다. 이게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거다. 부천시에서도 영상자료원 부천 분원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구청이나 시에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부탁하면 필름을 빌려주고, 아니면 우리가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앞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보다 영상자료원이 중요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배급문제로 다양한 영화를 못본다는 문제와 관련해 영진위는 정책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지만, 자료원은 실제로 다른 영화들을 보여줄 수가 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