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진흥기금 폐지 적절한가
2875억원. 1973년부터 극장 관객의 쌈지에서 나온 문예진흥기금 액수다. 이걸 2002년 기준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환산하면 4588억원이나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되고, 방울 모아 젖줄된 셈이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미비했던 시절, 문예진흥기금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든든한 보루였다. 이러한 문예진흥기금 모금은 올해 말로 끝이다. 준조세 폐지 입장에 따라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를 추진해왔던 정부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할 예정으로 그동안 기금을 운영해왔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까지 마련한 상태다.
원칙적으로 정부의 조치가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관객으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입장요금에 포함됐던 모금액 475원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예진흥기금이 폐지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극장 입장료가 인하될 것인가. 아쉽게도 극장쪽과 투자·배급사가 협의하여 요금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거의 없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인하는 없을 것”이라면서 “폐지가 되면 수익면에서 플러스 요인이 발생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이득을 챙기는 것도 아닌 만큼 그리 반기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6천원에서 7천원으로 인상하기까지 수차례 관객의 눈치를 봐야 했던 입장에서 정부의 문예진흥기금 폐지 조치로 힘들이지 않고 실익을 얻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계 전체로서는 문예진흥기금 모금이 중단됨으로써 입게 될 타격이 적지 않다. 최근 3년 동안 180억원을 지원받았던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기금 모금 폐지 결정(정부는 애초 2001년 말 기금 모금을 폐지하기로 했으나, 문화예술계의 반발로 2년 동안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후 지원금 규모가 2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전해에 비해 기금 모금액은 110억원이 늘어난 394억원 규모였다). 한국영상자료원도 마찬가지다. 이마저 내년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각종 예술지원사업 지원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여 매년 500억원씩 향후 5년 동안 문예진흥사업비 예상부족분 2500억원을 국고지원으로 충당한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충무로는 “국고 중 영화쪽 지원으로 약속된 부분은 불확실하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그동안 영화계가 기금 모금의 90%를 담당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 가운데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는 좀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또다시 일고 있다. 문예진흥기금은 운용 측면에서 ‘선진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사무국장은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쪽에서 출연해서 환영받지 못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역량을 키워야 할 영역을 지원해왔다”며 “문화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끔 해줬다”고 말한다. 프랑스 등에서 특별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극장요금 11%를 국내 영화진흥위원회에 해당하는 CNC에 내놓는 방안을 참조하면 어떨까. 한 영화인은 이와 관련해 “기존 모금액을 영화발전기금으로 전환할 만한 어떤 강제력도 없고, 극장과 투자·배급사들의 자발성을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고 말하고 “정부 조치가 국민 부담을 줄인다고 하지만 정작 배부른 이들은 따로 있다”면서 현재로선 “정부의 신중한 재고가 최선”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