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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미녀 삼총사2>를 보고 아련한 향수에 열광하다

`만리동 끼자매`도 굉장했지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를 보고 잠시 마음고생을 했다. 남들이 다 좋다고 소리높여 이야기하는 영화를 재미없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소외감이라면 남들이 다 후지다고 거품 무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자괴감이다. 역시 나의 수준이란…. 게다가 가짜 페미니즘에 소프트포르노라는 비판까지 나온 이 영화에 열광하다니 나의 빛나는 ‘정치적 올바름’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정신 못 차린 건가. 내 인생의 어떤 트라우마가 이 한심하다는 영화에 대한 강한 호감으로 병적 징후를 드러낸 것일까. 그리고 나는 알아냈다. 그 이유를. 그것은 이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던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나, 한때는 미녀였고, 나, 한때는 삼총사의 일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만리동 고개와 효창공원 일대에는 이른바 ‘만리동 끼자매’, ‘효창공원의 천사들’이라고 소문으로 떠돌던 미녀 삼총사가 실존했었다. 신문사 5층을 헤드쿼터 삼아 움직이던 우리 조직은 나와 여자의 탈을 쓴 남자, 그리고 남자의 탈을 쓴 여자 세명(그래서 어쨌든 여자 셋)으로 구성돼 있었다(온전한 여성은 나밖에 없었으므로 우리가 미녀 삼총사처럼 포즈를 취했다면 아마 내가 가운데 자리였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리는 낮이면 커다란 안경을 쓰고 기자로 일하는 슈퍼맨처럼 신분을 위장하고 일하면서도 틈만 나면 복도로 나와 재떨이에서 꽁초를 뒤지며 세상의 정의를 위협하는 불한당들을 어떻게 처단할까 심각하게 토론하곤 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또 잡담이냐?” “아예 책상을 복도에 갖다놓지 그래”라며 질시섞인 경외감을 드러내곤 했다.

우리가 악당을 처단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했다. 죽도록 ‘뒷담화’를 하면서 그 악당이 귀가 간지러워 도저히 잘 수 없게끔 고문하는, 지능적이면서도 다소 잔인한 수법이었다. 나중에 악당의 수명만 늘리게 됐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 격언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는 전략적 오류를 드러내며 결국 이 전술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며 나탈리가 남자친구와 같이 살게 됐을 때 딜런이 느꼈던 착잡함과 불안함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연애사업에 아낌없이 조언과 격려를 던져주면서도 조직의 건재를 위해 그 결과는 꼬이도록 용이주도하게 행동했다. 이를테면 그중 하나는 나에게 여러 번 남자를 소개시켜주었지만 항상 소주 두병 정도를 마신 다음 밤 11시쯤 남자를 불러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야, 정말 예쁘지?”소개를 하는 식이었다. 그때쯤이면 언제나 나는 자리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는 게 기적인 상태였고 이후로 그 남자뿐 아니라 그 남자가 아는 남자, 그 남자가 아는 남자가 아는 또 다른 남자에게까지 흉흉한 인상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영화에서 파헤쳐진 이들의 과거 역시 우리가 삼총사로 규합하기 전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지면 관계상 한 사례만 밝히자면 그중 한 멤버는 대학 학력고사 때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당시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폭탄 맞은 퍼머머리였고, 엄청 긴 손톱에 시뻘건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시험을 망치도록 인도해 대학에 합격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미녀 삼총사의 명성도 빛이 바래는 법. 우리는 약 1년6개월 전 조직의 발전적 해체를 선언하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은, 우리는 각자 메디슨처럼 “단독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메디슨의 비참한 말로는 미녀들이 연대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 앞만 보고 달리겠다던 한 멤버는 현재 김밥 옆구리 터지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타이로 떠났던 한 멤버는 퇴폐 사우나에서 때만 밀다가 돌아왔다. 나? 알면서 왜 물어보는가.

미녀는 뭉쳐야 산다는 이 영화의 큰 깨달음으로 얼마 전 나는 조직의 재건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조직원의 안정된 재생산을 위해 삼총사라는 이름을 걷어치우고 개방형 사교클럽 시스템으로 정비했다. 당시 ‘만리동 끼자매’라는 격조없는 이름을 지었던 그 멤버에 의해 ‘템테이션 아일랜드’라는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조직명까지 갖추게 됐다. 부럽지 않은가.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홍익대 앞 술집을 전전하며 세계평화와 정의구현을 고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