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똥개> 모두가 숨기는‥뻔한 현실 드러내기
2003-07-29

마초 요즘 가장 경멸스럽고 절망적이며 구제불능의 규정이다. 마초라고 찍히면 로맨스든 불륜이든 모든 것이 다 글러먹게 생겼다. 그래서 많은 남성들이 마초로 찍히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눈물겨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이 <챔피언>을 거쳐 신작 <똥개>에 이르기까지 마초 혐의를 무릅쓰고 일로매진하고 있다. 이 또한 눈물겨운 일이다.

주로 ‘똥개’로 불리는 황철민(정우성)은 밀양 경찰서 수사과장인 아버지(김갑수)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소매치기 정애(엄지원)를 집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둘의 로맨스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큰 플롯은 아버지와 똥개의 상극적이면서 우호적인 이바구다. 별 볼일 없는 인생들의 별 볼일 없는 이야기가 바로 <똥개>의 전모다. 이 큰 틀 속에 똥개를 똥개이게끔 하는 작은 플롯이 끼여든다. 고등학교 축구부 시절 똥개가 애지중지하던 ‘실물’ 똥개를 한 선배가 잡아먹는데, 이때 피운 난투극으로 똥개는 퇴학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에서 김치를 담던 날, 중퇴자들로만 구성된 자칭 지역 봉사 단체인 MJK(밀양주니어클럽, MJC가 아님) 일원이 찾아와서 그 곳에 가입을 하게 된다. 이후 축구부 선배들은 지역 개발 모리배들의 밑에 들어가서 일하는데 똥개들은 그들에 대척해서 싸우게 된다. 마지막 시퀀스, 패싸움으로 유치장에 갇힌 그들은 똥개와 그 선배의 결투로 죄 뒤집어쓰기 결투를 벌인다. 물론 똥개가 이기지만 둘의 싸움은 하나도 멋있지 않다. 여기에서 정애는 감초처럼 등장하지만 마지막의 서늘한 해피 엔딩을 예고하는 역할로만 그친다. 이 세 개의 플롯은 정교하게 얽혀 있지 않다. 또 개별적인 심리의 표현은 빠진 채 단지 입담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지지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빼어난 수작이기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똥개>는, 가공의 세계를 상업적으로 포장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것을 발언하는 듯한 우리 시대의 풍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마초 혐의를 무릅쓰고 ‘지금 존재하는’ 별 볼일 없고 우스꽝스러운 사내들의 현재를 담담하게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스꽝스러운 양아치와 건달들, 평범하기 그지없는 경찰들, 쉽사리 맺어지지 않는 로맨스, 폼날 것 없는 격투 장면 등, 이런 점들은 관습적인 영화적 장치들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이 영화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과 지역, 20%의 강자와 80%의 약자들, 멋있지만 뻔한 90%의 영화들과 모두가 숨기는 뻔한 현실을 드러내는 10%의 영화들로 고정된 이 현실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지지의 이유다. 마지막 발언. 슬기당당한 마초가 그립다. 영화평론가 이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