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 장면에서 나온 음악말야, 기억나?
<그녀에게> <화양연화> <트레인스포팅>등 음악없이 볼 수 없는 DVD 20 選
DVD가 열어젖힌 신세계는 고해상도의 화질과 생생한 5.1채널의 사운드만은 아니다. DVD에선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관객의 감정을 빨아들이기 위해 배치된 영화음악 또한 보너스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비디오에서도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물론 그렇지만, CD 수준의 음질과 원하는 음악이 담긴 장면을 곧바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DVD는 말 그대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기도 하다. 대개의 경우 선곡된 음악의 전곡을 들을 수 없으며, 음악이 대사에 묻히게 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DVD 플레이어가 홈시어터 또는 오디오와 연결돼 있다면 DVD는 O.S.T 음반이 제공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을 뛰어난 음질로 들려준다. 오히려 대사를 음악의 배경효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의 아우라를 살려주는 DVD 타이틀 20편과 핵심장면을 추천한다. - 편집자
감정을 연주하는 선율 <피아니스트>
La Pianiste | 2001년 |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이사벨 위페르, 브누아 마지멜 | 출시사 비트윈
8번 트랙/ 클레메(브누아 마지멜)의 연주가 시작되자 피아노 강사인 에리카(이사벨 위페르)는 미묘하게 몸을 떤다. 얼마 전 개인 연주회장에서 만나 마음을 뺏은 이 청년, 왜 내게 강의를 듣겠다며 오디션장에 나타난 걸까, 에리카의 심경은 복잡하다. 게다가 그가 선택한 곡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슈베르트다. 쓸쓸하면서도 화려한 <피아노 소나타 A메이저 ‘스케르토 알레그로 비바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에리카는 내면의 폭발을 애써 추스른다. 그의 거만하지만 뛰어난 연주를 받아들이는 일은 매혹에 굴복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무의식을 억누른다. 억압된 욕망의 소유자인 에리카로선 그의 열정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울 뿐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선율은 이미 그녀로 하여금 클레메를 뜨겁게 갈망하도록 만들었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연주장면 외엔 거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지만, 이들 음악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 흐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진지한데 웃기는 연인들
<오스틴 파워>
Austin Powers: International Man of Mystery 1997년 | 감독 제이 로치 출연 마이크 마이어스헤더 그레이엄 | 출시사 씨넥서스
15번 트랙/ “신사숙녀 여러분, 버트 바카라크와 엘비스 코스텔로입니다!” 노천카페에 다다른 오스틴(마이크 마이어스)이 갑자기 스크린을 향해 외친다. 이 순간은 이 장난기 어린 코미디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지한 때일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팝 작곡가 바카라크에 대한 마이어스의 개인적 오마주니까. 바카라크의 반주에 맞춰 영국의 로큰롤 뮤지션 코스텔로가 부르는 아늑한 발라드곡 <I’ll Never Fall In Love Again>에 맞춰 오스틴과 펠리시티(헤더 그레이엄)는 낭만적인 춤을 추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이 장면은 마지막 부분 ‘지구를 구할 거냐, 여자를 구할 거냐’는 선택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 이 시리즈의 1편인 <오스틴 파워 제로>의 중반과 3편인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바카라크는 여지없이 등장해 로맨틱한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를 부른다.
음악따라 이심전심
My Best Friend's Wedding | 1997년 감독 P. J. 호건 | 출연 줄리아 로버츠카메론 디아즈, 더몬트 멀로니 | 출시사 콜럼비아
16번 트랙/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마이클(더몬트 멀로니)은 철부지 키미(카메론 디아즈)와 결혼할 태세다. 다급해진 줄리언(줄리아 로버츠)은 질투심 유발 차원에서 게이 친구 조지를 불러들인다. 가족파티 자리에서 조지는 줄리언과의 사랑을 과장해 마이클의 신경을 긁는다. 그리곤 <I Say a Little Prayer>의 운을 띄운다. 처음엔 몇명만이 따라 하던 노래는 이내 파티장에 앉은 모든 이들의 합창으로 바뀌고, 흥겨운 “Forever Forever…”가 울려퍼진다. 하지만 노래에 신경을 못 쓰는 이가 딱 하나 있으니, 바로 마이클이다. 그는 줄리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니 왠지 섭섭하고 묘한 기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즐거운 장면이자 줄리언과 마이클의 ‘이심전심’을 잘 묘사한 베스트신. 음치 키미의 가라오케 장면(10번 트랙)이나 줄리언이 자신의 노래 <The Way You Look Tonight>를 빌려주는 장면(33번 트랙) 또한 놓칠 수 없다.
무덤덤한 슬픔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nenbaums | 2001년감독 웨스 앤더슨 | 출연 진 해크먼,기네스 팰트로, 오언 윌슨 | 출시사 브에나비스타
11번 트랙/ 풍비박산 직전의 테넌바움가에서 어머니의 결혼식장이 아수라장이 된 뒤, 이복남매 마고(기네스 팰트로)와 리치(오언 윌슨)는 옥상에 올라와 10여년 전 굴뚝에 숨겨둔 담배를 피우며 사랑을 확인한다. 그때 60년대의 아이콘 니코가 부르는 <The Fairest of the Seasons>가 흘러나온다. “이제 시간이 됐어/ 이제 시계바늘이 종착역에 도착한 거야… 남아야 할까 가야 할까 그걸 알고 싶어/ 아니면 다른 때에 할까” 등의 가사를 담은 공허하고 멜랑콜리한 노래가 나올 때 화면은 테넌바움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길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갑자기, 내레이션이 흐른다. “로열은 68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테넌바움가에 불행을 가져온 장본인이지만, 끝내 이를 해결한 로열의 죽음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등장한다. 노래 제목처럼 ‘세월의 공정함’을 무덤덤한 슬픔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울림을 준다.
청춘의 자기선언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 1996년 감독 대니 보일 | 출연 이완 맥그리거로버트 칼라일 | 출시사 ASI Korea
1번 트랙/ 쿵쾅쿵쾅….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업비트의 드럼 박자에 맞춰 이완 맥그리거가 글래스고 시내를 질주한다. 뒤에서는 “도둑이야!”를 외치는 누군가 따라오고, 수시로 자동차가 앞길을 막아서지만 맥그리거는 달리고 또 달린다. 로커 이기 팝이 부르는 <Lust For Life>에 맞춰 그는 독백한다. “삶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대형TV,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 자동병따개를 선택하라….” 그의 이야기는 역설이다. 그 모든 것을, 중산층의 길을, 체제편입자의 삶을 선택하기 싫은 청춘의 자기선언인 셈이다. 이기 팝이 부르는 ‘삶에 대한 욕망’ 또한 역설이다. “유니폼을 입고/ 정부의 보조금에만 의지해… 뇌를 두들기는 건 이제 그만/ 술과 마약으로” 등의 가사는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렌튼의 역설과 비슷하다. <트레인스포팅>이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강한 비트에 맞춰 어깨가 빠져라 팔을 흔들며 시내를 질주하는 싱싱한 청년의 이미지가 선하기 때문이리라.
전쟁의 광기, 혹은 몽환
Apocalypse Now Redux | 2001년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출연 마틴 신, 말론 브랜도 | 출시사 스타맥스
34번 트랙/ 이건 완벽한 혼란이다. 윌라드(마틴 신)는 정글 속에 숨어 신의 권위를 누리며 악행을 저지르는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커츠의 마을은 낙원에 가깝다. 가뜩이나 이 전쟁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윌라드의 정신은 더 어지러워진다. 윌라드가 무언가 결단을 내린 순간, 도어스의 묵시록적인 음악 가 흐른다. 그것도 사이키델릭 파워로 충만한 이 곡의 중반부가. 우리는 도어스의 몽환적인 사운드와 비뚤어진 앵글을 통해 윌라드의 현기증을 대리체험하며, 선과 악, 이성과 야만, 천당과 지옥의 점이지대로 향한다. <The End>의 초반부는 영화 시작(1번 트랙)과 함께 등장해 관객을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이끈다. 헬기를 이용한 마을 공습장면(8번 트랙)에 나오는 바그너의 <발키레의 비행> 또한 베트남전의 광기를 잘 보여준다.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1]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2]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