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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2]
이다혜 2003-07-25

우주의 리듬으로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 2000년감독 스티븐 달드리출연 제이미 벨 | 출시사 콜럼비아

1번 트랙/ 소년은 LP 디스크를 재킷에서 조심스레 빼내 턴테이블- 앰프 일체형 스테레오에 건다. 검은 바탕에 한 사람이 기타를 치고 있는 앨범 재킷을 보니 글램록의 대표밴드 T. 렉스의 <Electric Warrior>다. 바늘을 잘못 놓아 앰프가 뿌지직 소리를 내자, 소년은 다시 조심스레 두 번째 곡의 시작 부분에 바늘을 얹는다. 조용한 기타 반주에 맞춰 “나는 열두살 때부터 춤을 췄죠…”라는 가사가 서정적인 멜로디 위에 흘러나오고, 소년은 침대 위에서 붕붕 뛰기 시작한다. 빌리(제이미 벨)가 점프를 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첫 장면은 이후 빌리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흐르는 T. 렉스의 <Cosmic Dancer>는 “난 자궁에 있을 때부터 혼자서 춤을 췄네”라는 가사와 함께 빌리가 아버지의 소망과 달리 춤이라는 꿈을 향해 뛰어오를 것이란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침대 위에서 폴짝거리던 미운 오리새끼는 백조가 되어 노래에서처럼 ‘우주적 댄서’가 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든 음악

<매그놀리아>

Magnolia | 1999년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 출연 톰 크루즈줄리언 무어, 존 C. 라일리 | 출시사 스펙트럼

1번 트랙/ “1은 가장 외로운 숫자야.” <One>을 통해 에이미 만이 전해주는 싸한 감정은 <매그놀리아>의 첫 번째 시퀀스를 지배한다. 차례로 소개되는 여덟명의 캐릭터들은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설사 연관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에게선 타인과 부대끼고자 하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노래처럼, 그야말로 가장 외로운 혼자만의 세계로, 그리하여 여덟개의 세계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첫 장면은 에이미 만이 부른 다른 노래 <Save Me>가 흐르는 마지막 장면(12번 트랙)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이 여덟개의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세계 안의 티끌만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게 보여지고, 개구리 비가 쏟아지며, 혼자서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은 스러지거나 서로에게 기대며 구원을 찾게 된다. 이 외에도 에이미 만의 노래들이 영화의 구성요소라 여겨질 정도로 곳곳에 배치된 것은 앤더슨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구상했기 때문이다.

달의 여인에게 바치는 노래

<버팔로 66>

Buffalo 66 | 1998년감독 빈센트 갈로 | 출연 빈센트 갈로크리스티나 리치 | 출시사 다음미디어

8번 트랙/ 이 장면이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유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점 때문이리라. 도박빚 때문에 5년씩이나 남의 형벌을 대신 짊어졌던 한심한 청춘 빌리 브라운(빈센트 갈로)은 출소하자마자 댄스연습장에서 만난 레일라(크리스티나 리치)를 납치하다시피 고향집으로 데려간다. 그동안 결혼생활을 했노라고 부모를 속이기 위해서다. 황량한 분위기의 ‘귀향파티’가 끝난 뒤 둘은 볼링장으로 향한다. 여기서 문제의 장면이 시작된다. 레일라는 볼링 레인으로 나서 헛손질을 한다. 돌아선 그녀는 옆에 있는 봉을 잡는데, 갑자기, 그리고 뜬금없이 볼링장이 어두워지더니 그녀에게 핀 조명이 꽂힌다. 그 순간 “그녀는 달의 아이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킹 크림슨의 <Moon Child>가 흘러나온다. 레일라는 기다렸다는 듯, 그 느린 노래에 맞춰 쓸쓸한 탭댄스를 춘다. 불과 1분 남짓한 장면이지만, 몽롱한 음악과 탭댄스 리듬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걸어다닐 것이다.

밀회를 앞둔 심정이란

<남과 여>

Un homme et une femme | 1966년감독 클로드 를르슈 | 출연 아누크 에메장 루이 트랭티냥 | 출시사 워너

16번 트랙/ 이영애가 등장하는 모 카드 광고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유명한 이 영화 주제가 <남과 여>는 “빠바바바바 빠바바바바” 하는 허밍이 듣는 이의 마음에 수분을 뿌리는 고전이다. 사실, 이 곡은 영화 내내 수차례 등장하며 여러 형태로 변주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도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남과 여가 재회하는 대목일 것. 장 루이(장 루이 트랭티냥)가 도빌의 흐린 하늘 아래 적적한 해변에서 안(아누크 에메)과 재회하는 신은 음악의 멜랑콜리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특히 안을 기다리며 다급해지는 장 루이의 마음을 표현하는 빠른 템포의 변주곡은 인상적이다. 제작비 탓이었다지만, 흑백화면으로 바뀌는 실내장면 또한 음악의 분위기와 어우러진다. 미리 만들어진 음악을 틀어놓고 촬영한 덕인지 음악과 연기의 호흡이 일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남자의 일생

<배리 린든>

Barry Lyndon | 1975년 감독 스탠리 큐브릭 | 출연 라이언 오닐 마리사 베렌슨 | 출시사 워너

45번 트랙/ 허망하다, 인생이여. 장중한 첼로음과 똑똑 끊어치는 피아노 음이 레드먼드 배리(라이언 오닐)의 변화무쌍한 운명을 증언하듯 흘러나오는 가운데, 그는 한쪽 다리가 잘린 채 고향 아일랜드로 향하는 초라한 마차에 올라타고 있다. 어쩌면 아일랜드의 촌구석에서 범상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던 배리가 출렁이는 운명의 배를 타게 된 건 사촌 노라를 사랑하면서부터였다. 그녀를 걸고 결투를 벌이던 그는 귀족을 ‘죽이고’ 유럽 대륙으로 피신나왔고, 이후 영국군과 프러시아군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며, 프러시아 경찰로 활동하다 귀족 가문의 바깥 주인으로 신분상승을 이뤄냈다.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에서도 쓰였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4번 op. 100>은 굴욕과 승리, 시련과 영광을 거듭하면서 극적인 나날을 보냈던 한 남자의 인생사를 불안하게 흔들리는 선율 안에 포착한다.

눈물처럼, 사랑처럼

<그녀에게>

Hable con ella | 2002년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 출연 하비에르 카마라다리오 그란디네티 | 출시사 비트윈

9번 트랙/ “그는 수많은 긴긴 밤을 술로 지새웠네, 잠도 못 이루고 눈물만 흘렸네… 숨 거두는 순간까지 그녀만을 불렀네….” 브라질의 가수 카에타노 벨로소가 애절하게 부르는 <쿠쿠루쿠쿠 팔로마>는 주인공들의 운명을 예견한다. 이 순간, 식물인간이 된 알리시아(레오노르 발팅)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간호사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와 취재 도중 사랑에 빠진 혼수상태의 여성 투우사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를 돌보는 기자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중 누가 이 노래 속 비극의 주인공이 될지 알 길은 없지만, 이 노래가사는 두 남자의 사랑 방식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이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외로운 분위기의 노래는 영화 속에 몇 차례 등장하는 피나 바우시의 무용공연처럼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

<올모스트 훼이모스>

Almost Famous | 2000년감독 카메론 크로 | 출연 빌리 크러덥프란시스 맥도먼드, 케이트 허드슨 | 출시사 콜럼비아

13번째 트랙/ 스타덤이란 피라미드 같은 구조라서 오르면 오를수록 발디딜 곳은 좁아지고 미끄러질 위험도 커진다. 한 소년 음악평론가의 성장영화 <올모스트 훼이모스>에 등장하는 록밴드 스틸 워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틸 워터는 중견 밴드에서 일류 뮤지션으로 도약하려는 단계. 얄팍한 스타덤에 취한 밴드의 멤버가 음주사고를 일으킨 뒤, 서로를 불신하던 밴드 멤버들은 다시 뭉칠 수 없을 것처럼 반목하게 된다. 다음 공연장으로 향하는 버스 속 분위기도 썰렁하다. 그때 누군가 조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는 서서히 번지더니 모두가 따라부르며 밴드는 다시 결속력을 되찾는다. 엘튼 존의 <Tiny Dancer>는 그의 명곡들에 비하면 소품에 불과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해체 위기에 있던 한 밴드에 활력을 넣어준다. 헤비메탈 밴드 멤버와 추종자들이 버스가 떠나가라 우렁차게 발라드를 합창하는 모습은 이 밴드가 명예와 돈보다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집단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1]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2]

DVD 연속기획 1 - DVD로 듣는 OST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