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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음악과의 동침,창작 뮤지컬 <카르멘>
황혜림 2003-07-24

“내 삶, 내 방식, 나의 인생, 나의 운명, 어차피 내가 갈길 뒷걸음질은 싫어. 내 운명 죽음이라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뮤지컬 <카르멘> 중 ‘내 길을 갈 뿐’) 이 여인, 참으로 대담하고 거침없다.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미친 듯이 사랑하지만 그 틀에 얽매이는 법없이 사랑하고 싶은 만큼만 사랑하다 마지막 감정의 방울까지 말라붙는 순간 가차없이 다른 사랑을 찾아 날아가버리는 여자 카르멘. 1845년,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중편소설 <카르멘>에서 태어난 집시 여인 카르멘은 1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대담하고 치명적인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빌표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소설 속의 카르멘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일 것이다.

1875년에 나온 이 오페라는 스페인 세비야 지방을 무대로 담배 공장에서 일하는 매혹적인 집시 카르멘, 그녀에게 빠진 순간부터 운명이 꼬여버린 젊은 하사 돈 호세의 비극적인 사랑의 일대기와 이국적인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 7월11일부터 리틀엔젤스예술회관 무대에 오른 <카르멘>은, 소설과 오페라로 잘 알려진 원작을 전곡 새로 작곡한 음악으로 재창조한 국산 창작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이은 극단 갖가지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두 번째 공연이며, 7월27일까지 계속된다.

<시카고> 같은 해외 초청팀의 공연이나 <캣츠> <토요일밤의 열기> 등 외국 히트작들을 각색한 공연에 비해 창작 뮤지컬을 보기 드문 현실에서, <카르멘>은 돋보이는 시도. 춤이나 무대장치가 화려하진 않지만, 구름다리처럼 만든 2층의 무대를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우리말 가사로 창작한 노래와 음악, 극적 긴장을 살린 연출이 아니라 극적 긴장을 탄탄하게 포개놨다. 도입부부터 스페인풍 기타, 바이올린 등 현악기로 강렬하게 튕기는 리듬, 서글프면서도 낭만적인 선율의 조화를 들려주는 음악은 이국적인 정취와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의 행로를 역동적으로 뒷받침한다.

호세가 약혼녀 미카엘라에게 사랑을 맹세할 때 부르는 <영원의 끝날까지>, 공장에서 싸움을 벌인 카르멘 대신 수감된 뒤 그녀와 재회하면서 부르는 <미칠 것만 같았어>처럼 피아노와 현악 반주에 실린 서정적인 발라드 이중창도, 관객에게 감성적인 공감대를 끌어낸다.

“모포 한장이면 융숭한 하룻밤/ 그 설레는 대지와의 동침”이라며 떠도는 집시의 삶을 노래하는 <겨드랑이 바람>, 호세의 집착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카르멘의 <내 길을 갈 뿐> 등 독창적이면서 시적인 가사는 익숙한 <카르멘>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하는 요소. 자신의 욕망의 현재에 당당하고 충실한 카르멘의 현대적인 캐릭터와 그 열정의 궤도에 사로잡힌 채 파멸해가는 호세, 비극적인 긴장감을 이따금 늦춰주는 낙천적인 투우사 에스카미오와 조연들까지 <카르멘>은 원작의 극적 재미와 한국적인 재해석이 균형을 이룬 뮤지컬이다. 베르테르에 이어 호세로 호소력 있는 노래 연기를 펼친 배우 조승우와 더블 캐스트 이석준, 격정적인 카르멘 양숙형, 해맑은 고음이 돋보인 미카엘라 김선미 등 감정선을 살리는 배우들의 에너지도, 보는 재미에 한몫한다. 황혜림 blau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