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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싶다, 아니 깨겠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
사진 정진환박은영 2003-07-23

“아, 힘들다. 다음엔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를 해야지. 그래야 사진도 정적으로 찍지.” 제자리 점프를 해 보이는 등 역동적인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섰던 권상우가 촬영 막간, 땀을 식히며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데뷔 초기부터 유난히 욕심이 많아 보였고, 묻지 않아도 “다음 목표는 이겁니다”라며 눈을 빛내던 권상우는, 지난 해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초대박을 터뜨리며 충무로 섭외 영순위에 올라섰다. 한숨 돌려도 좋을 시점. 그런데 <말죽거리 잔혹사>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봄날은 간다>를 운운하던 권상우의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이제 그는 눈빛으로, 감정으로, 깊어지길 원했다.

“공부 안 하고 관성대로 가면 쉽겠죠. 근데 깨고 싶어요.” 권상우는 그가 쌓아온 이미지를, 그로부터 파생된 편견을, ’깨고 싶다’고, 아니 ’깨겠다’고 말했다. <화산고>의 과묵하기만 하던 학교 짱을, <지금은 연애중>의 철없는 연하남을, <일단 뛰어>의 돈 밝히는 고딩을,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기고만장한 말썽꾼을 넘어서겠다는 강한 의지. 권상우는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를 택했다고 했다. ‘이소룡 키드’였던 소년들의 성장드라마인 이 작품에서 권상우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삭이는, 평범한 청춘을 체현할 참이다. 권상우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예쁘게 담아내기 위해 기타도 배우고, 후반부에 짧고 굵게 선보일 “처절한 액션”을 위해 쌍절곤을 익히는 중이었다. 권상우가 특히 욕심을 내는 부분은 ‘멜로’연기. 여러모로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당신은 이 대목에서 한 자락 의구심을 품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대 한없이 가벼운 청춘의 표상이자, “노출과 나르시즘을 동반한 새로운 섹슈얼리티의 한 징표” (<문화일보>)로 떠오른 권상우는 과연 어떻게 자신을 가두는 이미지의 틀을 벗어내고 ‘배우 권상우’로 거듭날 것인가. 권상우에 대한 다섯 가지 편견과 진실을, 그의 속시원한 답을 여기 공개한다.

1. 권상우는 교복만 입는다 나이먹기 싫은데, 이것도 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는 학생이라는 설정만 전과 같은 거지, 시대도 다르고 이야기도 달라요. 제가 설치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구요. 지금 10대나 20대는 70년대 학원 풍경이 궁금할 거고, 30대와 40대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으니까, 다양한 세대가 같이 볼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학교생활이 답답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잖아요. 누구나 다 겪었을 법한 얘기고, 공감할 법한 캐릭터예요. 액션도 있고, 멜로도 있고…. 권상우, 쟤, 영화하는 애 맞구나,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줄 거예요.

2. 권상우는 몸매를 과시한다 (말 끊고, 정색하며) 그런 적 없어요. 제가 먼저 나서서 그런 적 없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강요했던 거지. 난 준비돼 있고 싶어요. 관리 잘해서 노출해야 할 땐 자신있게 하고 싶은 거죠. 잘하면 그게 내 매력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몸매가 내가 가진 매력 중 하나라는 거, 그래서 인정해요. 그런데 그런 말들은… 몸매 안 좋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 아닌가. (웃음)

3. 권상우는 발음 콤플렉스가 있다 그렇다고, 말 또박또박하게 할 때까지 작품 안 하고 놀까요? 그럴 순 없잖아요. 무슨 수술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도 지적받기 시작했을 땐 발음에 신경 많이 썼는데, 그러니까 오히려 연기에 몰입이 안 되더라구요. 그게 제 숙제죠. 알고 있어요. 그리고 감우성 선배님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발음상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대사 넘기는 방식 같은 것들. 노력은 하겠지만, 저도 부족한 점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4. 권상우는 가볍다 많은 분들이 ‘의외성’ 때문에 절 좋아하신다고 생각해요. 덩치도 크고 멀끔한데, 말투나 행동은 거기에 맞지 않는 데서 나오는 의외성. 저도 원빈이나 송승헌처럼 멋있게 보이고 싶죠. 그런데 제가 그러면 웃기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냥 편안하고 평범하고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했던 거예요. 데뷔 초기엔 제 웃는 얼굴이 맘에 안 들어서, 잘 안 웃고 그랬는데, 이젠 많이 자연스러워졌지요. 실제로 저는 밝고 가볍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맞아요. (매우 진지해진다) 아주 어려서부터 남한테 의존하지 않고 강하게 자랐어요. 살아오면서 깊은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면, 연기하기 힘들었겠죠.

5. 권상우는 변했다 저는 그대론데, 친한 척하는 사람들은 늘었어요. (웃음) 흥행 때문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자신감은 처음부터 늘 있었어요. 탄력을 받은 건 맞겠죠. 이럴 때 영화 빨리 찍어야 되는데, 하는 조바심이 약간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냉정히 말해서, 흥행은 돼야 하더라구요. 예술로 인정받는 것도, 남들이 웬만큼 작품을 보고 좋아해야 가능하잖아요. 흥행이 곧 예술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이젠 멜로도, 코미디도 다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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