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3제국(일명 나치) 시절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던 스웨덴 출신 글래머걸 차라 레안더(Zarah Leander·사진)가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언론인 아르카디이 왁스베르크의 폭로기사가 스웨덴 일간지에 게재된 것이 7월 초. 그는 레안더가 2차대전 발발 전부터 로즈마리라는 암호명으로 크렘린의 첩자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고위급 인사와 직접 핫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증거를 최근 KGB 문서보관실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레안더가 우리에게 북구, 미국과 독일의 정치적 관심사에 관련된 정보들을 친절하게 전해주었다”는 내용의 정보부 장교 육성 녹음테이프도 찾아냈다고 한다.
왁스베르크는 1936년부터 독일 영화제작소 우파(Ufa)의 전속배우로 활약했던 차라 레안더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첩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레안더는 영화계 데뷔 뒤 곧바로 톱스타로 부상, 늘 최고 개런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안더가 돈 욕심이 많았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녀의 회고록에는 “나는 정치에 전혀 관심없다. 단지 전쟁 중 독일에 있는 내 재산을 모국 스웨덴으로 무사히 빼돌리기 위해 나치 재무장관과 상당히 화끈한 하룻저녁을 보냈던 일이 있을 뿐”이라는 구절도 있다.
4년 전에도 스웨덴 언론인에 의해 레안더의 스파이 의혹이 제기된 바 있었다. 레안더가 1943년 모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1950년대 말까지 소련 정보부를 위해 활약했다는 증거들을 스웨덴 정보부인 ‘재포’에 보관 중이라면서 미국 CIA의 보고서까지 인용했었다. 그러나 당시 기사는 레안더가 나치에 연합군 잠수함의 기항지를 알려주는 대가로 받은 돈으로 스웨덴 뢰노 지방의 농장을 구입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레안더는 소련과 독일의 이중첩자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안더는 스웨덴판 마타하리?
왁스베르크가 이중첩자의 의혹을 제기한 대상은 레안더뿐만이 아니다. 독일영화 제작소 우파를 주름잡던 여배우 올가 체코바와 마리카 뢰크 역시 스파이였는데, 체코바의 경우 중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신파조 사정이 있었다고. 그녀가 소련 정보부에 보낸 감사의 편지도 문서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헝가리 출신인 뢰크가 오스트리아에 영화제작사를 차린 자본은 첩자활동의 대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성장한 올가 체코바는 1922년 영화계에 데뷔했고, 1929년 할리우드에 잠시 진출했다가 곧 독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나치 고위 정치인들 술자리에 자주 어울렸고, 히틀러의 연인이었던 에바 브라운과 절친했다. 전쟁사를 통틀어 최대의 탱크전으로 유명한 독일과 소련간의 쿠르스크 전투(1943)를 앞두고 소련에 나치공격을 경고한 이가 바로 체코바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