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CJ엔터테인먼트의 독주는 단연 돋보인다. 겨우 상반기를 지났을 뿐이지만 올해 시장점유율에서 CJ가 1위를 차지하리라는 예상은 당연해 보인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전국관객 480만명을 돌파하고 <살인의 추억>이 500만명을 넘긴데다가 최근엔 <반지의 제왕3>를 배급한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강복씨의 표정이 밝은 것은 예상했던 대로다. 그는 “2편 흥행한 걸 갖고 뭘 그러느냐”고 손사래를 치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미소를 숨기지는 않았다.
최근 CJ의 상승세는 지난해 우울한 성적표와 대조를 이뤄 더욱 뚜렷해 보인다. 지난해 CJ의 한국영화 성적표는 13전 1승2무10패였다. 하지만 영화인들의 관심이 CJ가 올해 시네마서비스를 추월할 것인가에 놓여 있는 건 아니다. 당장 CJ의 행보에서 두드러지는 건 자체 제작시스템을 만들면서 코미디영화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위대한 유산>은 그 첫 작품이다. 정초신 감독 영입설도 여러 가지 추측을 부풀리게 하고 있으며 올해 초 시도했다 무산된 CJS연합의 전말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대목이다. CJ의 선택이 주류 영화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기에 이강복 대표의 생각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반지의 제왕3>를 비롯해 태원의 외화를 배급하기로 했는데, 어떤 과정으로 진행된 일인가. 그동안 시네마서비스에서 태원의 외화를 배급해왔는데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가 나서게 된 거다. 태원의 외화를 우리가 전부 배급하는 건 아니다. <반지의 제왕3>을 포함, 7편만 계약했다.
CJ 외화 라인업은 그간 드림웍스 중심이었다. 태원의 외화가 들어오면 상당한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드림웍스 영화가 작품이 별로 없어서, 1년에 2∼3편밖에 안 되니까 우리 입장에선 잘된 일이다. 안 그래도 외화 라인업이 필요하던 상황인데 갑자기 제안이 들어와서 흔쾌히 우리가 배급하겠다고 나섰다.
올해 상반기는 CJ의 독주가 돋보인다. 잘되긴.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살인의 추억>, 2편 잘된 거밖에 더 있나. 지난해엔 시네마서비스가 여러 편 흥행하지 않았나? 워낙 안 되다가 터지니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 아니겠나.
그래도 CJ 내부 분위기가 많이 좋아진 거 같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흥행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심각했던 걸로 기억한다. 안 되면 어차피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운되는 건 당연한데…. 콘텐츠 비즈니스란 게 콘텐츠에 따라 잘됐다 안 됐다를 반복하는 거 아닌가. 미국 스튜디오도 그렇잖나? 어느 해엔 좋은 영화가 나와서 잘되고 어느 해엔 안 되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건데 회사 실적이 안 좋아지니까 말이 많이 나오긴 했던 거 같다. 우리는 창투사처럼 한번 하고 말 게 아니잖나. 잘되면 좋지만 안 되도 손을 뗄 수는 없다.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와 올해 흥행성적이 이처럼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해에 여러 편 안 되면서 반성을 많이 한 거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흥행하면서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어서 예술, 감동, 이런 거 위주로 생각했다. 대작들도 많이 만들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특별한 스타일도 해보고 그러면서 영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 많이 했다. 하지만 관객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영화를 좋아하는 걸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영화라는 게 일방적인 만족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처음 나온 게 <피아노 치는 대통령>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였다. 코미디를 거의 안 만들다가 했으니까. 나도 그렇고 CJ가 전반적으로 코미디는 약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는데 못 쫓아간 거다. 용역을 줘서 요즘 세대에 대한 연구도 했는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제일 충격적인 게 뭐냐면, 기성세대는 어떤 정보를 받으면 옳으냐 그르냐를 이성적으로 따지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 요즘 세대인 감성세대는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영화도 오락으로, 즐기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쪽이 많았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요즘 젊은 관객 취향에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를 안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일단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CJ에선 코미디 아니면 안 한다더라,는 말도 나온다. 그렇진 않다. 내년에 나올 영화는 감동적인 게 많다. 올해 하반기엔 코미디가 좀 많지만 내년은 또 다르다. 관객 패턴도 달라진다고 본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 거고 관객도 다양한 영화를 선호할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살인의 추억>이나 <장화, 홍련>이 잘되는 걸 보면 그렇지 않나.
최근에 CJ에서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제작사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영화사마다 어떤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든가 기회가 있으면 해보자는 거다. 본격적으로 여러 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1년에 많이 해봐야 2∼3편 정도 해보자는 거다.
기존에 제작사에 맡겨두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제작사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그걸 벗어나기 어렵다. 스타일이 다른 제작사가 여럿 있어도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를 수 있고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아서 직접 만드는 것을 생각한 거다. 다양성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코미디를 만드는 게 필요해서 아닌가. 그것도 일리가 있다. 제작비는 많이 안 들어가는데 내용이 좋은 코미디, 그런 게 필요하다. 대체로 제작사에서 들고오는 프로젝트는 제작비도 많이 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영화가 많다.
앞으로 제작비 규모가 큰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인가. 물론 특수한 경우엔 할 수 있다. <무사>처럼 중국에서 찍는다든가 해외합작이라든가. 국내 시장만으론 한계가 뚜렷한 거 같다.
시장의 한계가 제작비 몇억원 정도라고 생각하나. 제작비 40억원, 마케팅비 합쳐서 50억원 정도 아닐까. 대체적으로는 20억∼30억원 사이 영화를 만들고 경우에 따라 제작비 60억원까지 생각해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최근 제작사의 불만사항 가운데 하나는 CJ에서 시나리오 개발비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인데. 왜 안 하나. 더 많이 하고 있다. 개발비 지원을 안 하면 물건이 안 나오는데 그럴 수는 없다. 시나리오 개발이 잘 안 되는 곳에 대해서 우리는 더 못하겠으니 다른 데서 하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잘못된 소문인 거 같다.
기존 제작사와 관계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 명필름이나 싸이더스 영화는 다 투자하는 식이었는데 이젠 작품별로 계약을 하는 식이다. 그런 기회를 줬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바뀐 셈이다. 결과가 좋았다면 계속 그런 식으로 갔을 텐데 같은 패턴으로 몇번 실패를 하면서 달라졌다. 제작비 규모가 너무 큰 프로젝트는 일단 제쳐두는 편이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하자고 말하는 편이다.
<살인의 추억> 배급하면서 <질투는 나의 힘>을 극장에서 일찍 떨어뜨려서 <질투는 나의 힘> 제작사쪽에서 불만이 많았는데.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질투는 나의 힘>은 영화의 스타일이나 관객의 기대치라는 점에서 봤을 때 오래 건다고 잘될 영화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관객이 조금 더 들 수는 있었겠지만 큰 차이가 나진 않았을 거다. <살인의 추억>은 시사를 보고 이 영화는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영화를 알릴 수 있는 방식은 마땅치 않았다. 사람들이 일단 빨리 보고 입소문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개봉을 일주일 당겼다. 실제로 <살인의 추억>은 개봉주보다 개봉 다음주에 관객이 더 들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개봉할 때도 그랬다. <이중간첩>이 개봉한 다음주에 개봉할 예정이었는데 일주일 당기자는 판단을 했고 그래서 잘됐다. 일주일 당기느라 감독이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과로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흥행면에서 매우 유리해졌다.
올해 초 플레너스를 인수하려다 포기했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인수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알려진 대로 가격 차이 때문이었나. 사실 플레너스를 인수하려고 했던 건 영화쪽보다 게임쪽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겉으론 영화를 한다고 얘기했지만 게임의 가능성에 높은 비중을 뒀다. 이전에 CJ에서 게임에 투자해서 실패한 예가 있었는데 게임포털인 넷마블을 인수하면 게임업계에 쉽게 진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 건 가격문제도 있었지만 가격 외의 문제가 컸다. 가격은 우리가 포기하고 나서 더 올라가지 않았나. 영화를 독점한다는 여론이 워낙 강해서 그걸 무릅쓰고 인수할 경우 헤쳐나갈 법적, 제도적 문제가 만만치 않더라. 그게 더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입장에선 플레너스 인수가 무산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로선 아쉽다. 시네마서비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게임이 영화나 음악보다 큰 산업이라고 본다. 언어장벽이 없으니까 발전할 가능성도 훨씬 크다. 우리로선 생소한 분야라 처음부터 직접 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미 존재하는 걸 인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게임업계에 진출할지 모색해야 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전체 사업의 큰 축으로 게임을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 게임도 큰 분야고 이번에 공연사업에도 진출한다. 지금은 외국 공연을 들여오는 식으로 가고 있는데 시간이 좀더 지나면 국내 공연도 활성화될 거다. 실제로 들여올 외국 공연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뒤론 창작 공연의 시대가 올 가능성이 많다. 그걸 대비해서 외국 공연을 들여오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게임과 공연 외에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고민 중이다. 워낙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니까 시간이 더 걸릴 거 같다. 최근엔 조이큐브라고 DVD, 비디오, CD, 게임 등을 대여하는 가게를 열기도 했다. 70평 정도 규모로 목동에 미국의 블럭버스터 체인같은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잘되면 프랜차이즈를 많이 늘려갈 생각이다. 기존 비디오가게의 문제점이 빌리러 가면 없다는 점인데 이런 대형체인점은 언제 가든 빌릴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미국은 비디오, DVD 등 극장 외에서 나오는 수익이 더 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런 렌털숍이 성공해서 시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다시 스크린쿼터가 첨예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CJ의 대표로서 어떤 입장인가. CJ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는 스크린쿼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CGV 주주 입장으로선…. 허허허. 글쎄. 없어져야 한다 그러면 몰매맞을 일이지.
극장 입장에서는 스크린쿼터가 없는 게 낫다는 얘기인가. 그런 건 아니다. 최근 몇년간 한국영화 덕분에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나. 하지만 극장만 하는 사람이라면 걱정하는 게 있긴 할 거다. 예를 들어서 한국영화가 관객이 안 들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걱정스러운 건 최근 여론이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쪽보다 줄여야 한다는 쪽이 많은 것 같다. 영화 유통이 어떻게 특수한지 잘 설득해야 하는데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거 같다.
정초신 감독을 영입한다는 보도가 나간 적이 있다. 지금도 추진 중인가. 정초신 감독이 미리 말을 하는 바람에 유야무야됐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지금 당장은 연출하기로 계약한 작품이 많아서 하기 힘들지만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까.
정초신 감독이 CJ로 들어온다면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 프로듀서를 하는 거다. 전체 제작 라인업 가운데 일부를 맡아서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물 건너간 거다. <남남북녀> 다음에 연출할 작품도 정해져 있어서.
어쨌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시네마서비스는 김상진, CJ는 정초신 두 감독이 전체 라인업을 정하는 게 아닌가 염려하기도 한다. 아이, 그럴 리가 있나. CJ 석동준 팀장도 있고 다른 제작사도 있는데. 각자 몇편씩 맡아서 관리하는 정도지. 그런데 뭘 염려하는 건지 모르겠다.
두 감독의 성향이 코미디를 좋아하니까 전체 한국영화도 코미디 위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거 아니겠나. CJ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로 들린다. 지난해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다면 정초신 감독을 영입하려 한 것은 코미디를 많이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도 되나. 그렇다. 우리가 코미디쪽이 약하니까 외부인사를 영입해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아주 오래 전부터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걸 생각했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 못했을 뿐이다. 정초신 감독이 안 되더라도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