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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의 트로트 리메이크 음반
2003-07-19

옛 노래, 새로운 질감

한영애는 참 천연덕스럽다. 물론 청중과 마주한 채 음악과 실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공연 무대에서 뮤지션들은 어떤 형태로든 천연덕스러워지겠지만, 그는 유난히 그래 보인다. 지난 7월11일과 12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Full Moon’ 콘서트에서도 그는 여전했다. 담양에서 공수해왔다는 대나무와 달을 배경으로, 청록과 보랏빛 조명 아래 만월의 숲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사뿐히 즈려 밟고’ 걸어나온 한영애. 그가 신묘한 의식을 치르는 샤먼처럼 요령을 흔들며 서서히 객석을 향해 몸을 틀고 “아름답고 소중해 단 한번 열고 닫는 무대/너와 나 둘이는 멋진 주인공이네” 하는 <감사의 마음>을 부르는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는 주술을 걸어온다. 몸 속 어딘가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양 깊고, 허스키하면서 시원스레 뻗어나오곤 하는 음색. 그래서 드럼 비트를 반주삼아 마임 같은 몸짓을 해도, 그 흔한 안녕하세요, 한마디 없이 7∼8곡을 내리 불러도, 객석의 눈과 귀를 포박하는 그 흡인력은 정교하게 ‘연출’된 게 분명한 무대 위의 그를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하긴, 불혹을 성큼 넘긴 나이에 헤드셋을 쓰고 무대를 누비며, 휴식없이 2시간 가까이 라이브를 펼칠 수 있는 에너지를 지닌 가수는 많지 않다. 해바라기의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던 76년부터 꼽으면 27년째, 첫 솔로 음반을 선보인 85년부터 18년째. 5장의 솔로 음반과 프로젝트팀 신촌 블루스, 다수의 옴니버스 음반을 거치면서, 한영애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꾸준히 오랜 시간 음악을 지켜온 여성 가수다. 종종 ‘소리의 마녀’, 혹은 ‘마성’, ‘주술적’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 그의 노래는, 출발점인 포크와 몽환적인 깊이를 지닌 음색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블루스, 록부터 레게, 테크노와 트립합 등 변화하는 음악의 흐름을 흡수해왔다.

이번 공연은 99년의 5집 <난다 난다 난.다>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신보 <Behind Time>의 발매 기념 콘서트. <Behind Time>은 뜻밖에도, 통칭 트로트로 불리는 “옛 가요”의 리메이크 음반이다. 공연 전날 마포의 선뮤직 스튜디오에서 리허설을 마친 그를 만났을 때, 20년 넘게 고수했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변모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별 이유는 없다. 머리카락이라는 게 사람을 구속하는 것 같아서”라고 웃는 그는, 5집에서 <봄날은 간다>를 리메이크했을 때 중년층은 물론 20대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옛 가요를 다시 부를 생각을 했다고. 책과 복각판을 통해 300곡가량을 들으면서 “2003년에 들어도 공감할 만한 가사”를 가진 곡들을 골라냈고, 장영규, 달파란, 방준석 등 복숭아 프로젝트 팀과 함께 작업하면서 “노래말과 멜로디는 원곡 그대로 살리되, 꺾고 굴리는 트로트 창법을 자제하고 마른 느낌의 사운드”를 내고자 했다.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사의 찬미>,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이 끌어가는 <애수의 소야곡>, 스카풍으로 편곡한 <선창>, 트럼펫과 피아노 등 블루스와 재즈 분위기를 오가는 <외로운 가로등> 등 간결하면서도 어쿠스틱한 사운드, 감정을 절제한 채 쭉쭉 내뻗는 한영애의 창법은, 1925년부터 1953년 사이의 곡들을 옛 정취와 새로운 질감의 조화로 되살려냈다. 황혜림 blau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