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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퍼> “정신분열증 걸린 007 영화?”
2003-07-18

<싸이퍼> 갖고 부천영화제 온 ‘괴짜 감독’ 빈센조 나탈리

캐나다의 빈센조 나탈리(34) 감독이 18일 부천국제영화제의 폐막작 <싸이퍼>의 상영에 맞춰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는 97년 순제작비 15만달러의 초저예산영화 <큐브>에서 극한상황에 몰린 인간들의 잔인하고 야비한 본성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수학적 퍼즐 같은 미로찾기 과정을 내보이며 전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에스에프와 스릴러, 판타지를 넘나드는 <싸이퍼>(2002)는 산업스파이 의뢰를 받은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를 통해 어찌 보면 <매트릭스>보다 더 흥미롭게 주체성과 시스템의 통제 문제를 묻는 작품. 실존적이되 007 시리즈를 패러디한 마지막 장면처럼 전형적인 스파이 영화의 유머나 로맨스 또한 품고 있다. 만화가를 꿈꾸다 11살 때 본 <스타워즈> 이후 직접 8㎜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기 시작한 그는, 스스로 자신을 “좀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괴짜”라 말하며 큰 키에 장난기 있는 눈을 반짝였다.

5년 만의 신작이다. 왜 이리 오래 걸렸나.

스탠리 큐브릭의 흉내를 내려 했다.(웃음) 농담이고, 제작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평범하지 않은 영화의 투자자 구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싸이퍼>는 부분적으로 미국회사의 투자를 받았지만 프랑스, 일본, 한국 등 마켓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제작됐다. 총예산은 750만 달러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별 풍족함은 느끼지 못했다.

할리우드에서 <큐브2>를 만들었는데….

아직 못 봤다. (<큐브>가 낫다고 말하자) 시리즈를 만드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원래 감독 제안이 왔지만 내가 거절했다.

스탠리 큐브릭이나 알프레드 히치콕 같은 감독들의 영향이 보인다.

영화를 본다는 건 작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독들은 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 가장 영향을 받는 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이고. <싸이퍼>를 한 마디로 말하면 “프란츠 카프카가 쓴 제임스 본드 영화”다. 아마 007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면 <싸이퍼>의 주인공 아닐까. (웃음) 그런 면에서 <싸이퍼>는 잡종(하이브리드) 영화다.

영화를 보면 개인의 성향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난 학교를 정말 ‘증오’했다. 에스에프나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도 도피의 한 방법일지 모른다. 어렸을 때는 만화책에 빠졌다. 내 영화의 주인공들이 ‘반영웅’인 것도 그런 영향일 거다. 그때부터 수퍼맨처럼 별 갈등 없는 영웅은 관심없었다. 대신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실수하고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다. 사람이란 자기 운명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보다 현실적이고, 흥미롭다.

<큐브>는 토론토의 한 창고에서 세트 하나로 찍었다. <싸이퍼>는 어땠는지. 배우들도 유명배우들이 등장했는데.

이번엔 로케이션이 많았다. 특히 건물은 대부분 정부청사의 건물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게 정부건축들이다. 루시 리우는 시나리오를 보고 본인이 직접 찾아왔다. 제레미 노담은 원래 좋아하는 배우였고. 아, 단편때부터 매번 내 영화에 나오는 고등학교 친구 데이비드 휼렛은 이번에도 등장했다.

할리우드의 손짓이 많을 것 같은데.

할리우드는 요구가 구체적이고 직설적이다. 관객이 혼돈스러워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접촉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또 어렸을 때부터 함께 영화를 찍던 동료들이 모두 토론토에 있다. 물론 기회가 되면 할리우드에서도 작업하겠지만.

최근 <낫씽>이라는 “기이한 코미디”의 촬영을 마친 그는 부천영화제가 “내가 좋아하는 경향의 작품들이 많은 영화제라 기대된다”고 들떠했다. 특히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기대작이라며. 부천/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