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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속의 웬수,<위대한 유산> 촬영현장
박혜명 2003-07-18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트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제5스튜디오 안쪽에 재현된 자동차 트렁크 내부 공간. 스티로폼 재질로 만들어 두른 벽과 꺼칠한 바닥 깔개, 그 위로 세척제와 막대걸레가 뒹구는 이 비좁은 자리에 양손이 묶인 주인공 남녀가 몸을 구겨넣고 누워 있다. 형에게 빈대붙어 사는 구질구질한 백수 청년 창식(임창정)과 비디오 가게의 짠순이 여주인 미영(김선아)은, 단돈 100원 때문에 앙숙이 된 사이다. 그만큼 궁한 처지다보니 사례금 500만원에 혹해 서로 뺑소니 목격자를 자청하고 나섰다가, 웬놈들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원수덩어리 손목에 묶인 밧줄을 서로 풀어주는 두 사람. 창식의 딴소리로 미영이 짜증을 낸다. “샴푸 뭐 써요?” “지금 그런 거 물어볼 때예요?” 이 순간을 취재하기 위해 좁은 트렁크 둘레로 다닥다닥 겹겹이 달라붙은 취재진. 이들과 스탭들로 채워진 스튜디오 내부는, 최소한의 조명만 켜져 있어 구석구석 어두울 뿐더러 무척 후텁지근했다.

인터넷 소설 <백수의 사랑 이야기>의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위대한 유산>은, 고학력 출신의 엘리트 백수 청년과 탤런트를 꿈꾸는 백조 여인을 데리고 “돈보다도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유쾌하게 말하는 영화다. 충무로 입성 10년 만에 데뷔하는 오상훈 감독은 코믹영화 촬영현장의 지휘자치고 지나치게 조용해 보였지만 송창용 프로듀서 말에 따르면 “오랜 조감독 활동으로 내공이 쌓여서 그런지 현장에서 굉장히 노련한 사람”이다. 그 노련함은, 호흡도 잘 맞고 여유도 넘치는 주연배우들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은 내가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임창정과 “이렇게까지 역할에 욕심난 적은 처음”이라며 예의 그 씩씩한 미소를 날리는 김선아. 영화 컨셉도 임창정이 대신했다. “풋풋하고 따뜻한 영화다. 여러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거다.” 세트만큼이나 소(小)한 시민 남녀의 이야기 <위대한 유산>은 국내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자체 제작 1호. 촬영은 양수리촬영소와 일산을 중심으로 10월 초까지 계속되며, 개봉은 그달 말께다. 사진 정진환·글 박혜명

♣ 두 배우가 트렁크 속을 탈출해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 왼쪽)♣ 세트 주위에 한데 엉킨 스탭과 취재진들. 현장은 사진에서보다 훨씬 북적거렸다.(사진 오른쪽)

♣ “배우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하는 오상훈 감독이 생각하는 감독이란, “현장에서의 리더가 아니라 집단의 조합자”다.(사진 왼쪽)♣ 연출부에 지시를 내리는 감독. 목소리는 작아도 말투는 꽤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