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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소년의 소박한 `성장동화`,<똥개>
■ Story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동네아줌마 여섯명의 동냥젖을 먹고 자란 철민(정우성). 어린이날, 경찰인 아버지(김갑수)가 잡종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한 날부터 철민은 학교에 갈 때도 집에 있을 때도 늘 ‘똥개’와 함께다. 누군가 ‘똥개야’라고 부르면 강아지와 함께 뒤를 돌아보는 철민. 그러나 철민을 싫어하는 진묵(김태욱) 패거리가 똥개를 잡아먹는 일이 발생하자 참지 못한 철민은 그들과 패싸움을 벌이고 고등학교를 그만둔다. 퇴학당한 뒤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에게 자칭 ‘MJK’(밀양 쥬니어 클럽)의 멤버인 대떡이와 응군이 찾아와 결투를 신청하고 리더인 쇠파리와의 실없는 싸움 한판에 이기면서 철민은 MJK의 리더가 된다.

■ Review

큰 성공을 이룬 이에게 늘 다음에 싸워야 할 상대는 거울 속에 있다. 800만명을 넘는 <친구>의 흥행신화는 데뷔작 <억수탕> 이후 <닥터K>의 고전을 거친 곽경택 감독에게는 강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는 이 성공과 함께 자신의 앞길에 높디 높은 허들을 스스로 묻은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실존인물의 죽음이라는 강렬한 사건의 무게에 짓눌렸던 <챔피언>의 흥행부진은 <친구>의 성공에 따르는 예견된 실패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 시사회장에서 “어깨에 힘을 쭉 빼고 만들었다”는 인사처럼, <똥개>는 곽경택이 무엇이 자신의 진짜 장기인지를 현명하게 직시한 결과물이다. 강원도 사투리가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로, 집념의 영웅의 비장미가 아니라 소박한 인간군상의 허술함에게로 포커스를 옮겨간 <똥개>는 <친구>의 망사판 위에 <억수탕>의 마음으로 한땀한땀 수놓은 소박한 스킬 한점이다.

하여 <똥개>를 보면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장례식, 학교 운동장, 교도소 면회실 등의 공간적인 겹침뿐 아니라 똥개를 비롯해 “이소룡이 죽어서 자기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국일관의 철가방 쇠파리, 정비공장에서 일하는 착한 대떡이, “소년원 씨름대회에서 그랑쁘리 묵고 일본에서 스모선수제안도 받았다는” 덩치 큰 응군이 같은 4명의 친구와 가운데 손가락에 조잡한 ‘王’를 새기고 ‘로데 5거리’에 정통 원두커피숍차리는 게 소원인 ‘좀 놀았다’는 여자아이, 부패한 기업인과 조폭패거리 같은 인물들, 아버지와의 애증의 대결구도까지 <똥개>는 <친구>에 등장했던 공간과 구조, 인물까지 그대로 가져와 다른 색을 칠하거나, 재배치하거나, 때론 변형시킨다.

<친구>에서 “더 워드 오부 폴루션 모스트리 민즈…” 하며 천연덕스러운 사투리 영어를 구사하던 양중경은 신용금고 악덕회장 오덕만으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를 묻던 국어 선생님은 “우리는 회장님의 복슬 강아지”를 외치는 ‘문어대가리’ 석팀장으로, 준석의 사촌 ‘도루코’로 등장했던 김태욱은 10kg을 늘려 빈정대기의 일인자인 동네건달 진묵으로 재탄생했다. 구조적으로 <친구>와 <똥개>는 묘한 역대칭을 이루고 있다. 평화로운 아이들의 물놀이 풍경에서 시작해 분노가 폭발하는 장례식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친구>와 달리 <똥개>는 장례식으로 시작해 “입 안이 터졌으니까, 밥에 찬물 말아주까?”를 물어보는 평화로운 다리 위 풍경으로 마무리된다. 경쾌한 음악이 깔리면서 마치 일상생활처럼 처리한 <똥개>의 긴 상여행렬은, 복수의 단초가 되었던 <친구>의 엄숙하고 장렬한 장례식 풍경과 달리 평화롭고, “친구야!”를 외치며 유리 너머 손바닥을 맞부딪치는 울분과 격정의 공간이었던 면회장은 “뭐땜에 태어나가… 괴롭히냐고 했던 말… 그거 진짜가?”며 묻는 아들에게 “니 놓으면 느그 엄마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내가 그냥 놓자고 했다”는 부자애를 확인시키는 훈훈한 장으로 바뀐다. “그라니까 내 쿨하게 물어보께.” “그래.” “…했나?” “…아니.” 철민과 섹스를 했느냐 안 했느냐를 놓고 정애와 순자, 두 여자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준석과 동수의 그 나이트클럽 담판 못지않게 팽팽하다.

이렇듯 <친구>가 한편의 장렬하고 비장미 넘치는 남성용 성인소설이었다면 <똥개>는 변두리 한 소년의 소박한 ‘성장동화’다. 잔인하고 음험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등을 돌린 채 <똥개>가 관객에게 들이미는 것은 쑤셔넣은 뒤에 한 바퀴 돌려 회를 떠버리는 사시미칼이 아니라 살짝 따끔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마치 준석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플라스틱 장난감 칼이다. 악인도 그다지 악하지 않고 싸움도 생명이 오고 갈 만큼 비정하지 않다. “원래 몬 배우고 무식하면 치이고 벌받는 게 정석인 게 이 사회”라고 말하면서도 영화는 마지막에 악덕한 덕만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아첨꾼 ‘문어대가리’가 경찰서에서 철민의 아버지에게 취조받고 자백하는 과정의 화면이 마치 멜로영화의 러브신마냥 포기필터로 처리된 것도 이런 동화스러운 기운을 더한다. 특히 “그래가 아버지랑 내캉 정애는 지금 밀양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식으로 마무리짓는 후렴구는 명백히 <똥개>가 동화적인 구성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똥개>의 또 다른 도전 중 하나는 과연 정우성이란 스타의 ‘미남 콤플렉스’를 얼마만큼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는가였을 것이다. 후줄근한 추리닝바람에 덥수룩한 수염이 주는 비주얼적 충격은 정우성의 일대변신을 예고하는 듯했지만 시종일관 사선으로 들이미는 턱의 움직임, 둥근 공명을 만들며 터져나오는 정우성의 사투리 발성과 감정표출은 한 스텝만 다운시켰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오히려 정우성의 똥개스러움이 드러나는 순간은 TV를 보려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다가 몸을 한번 뒤집어서 스스르 빠져나가는 뱀에 가까운 동작이나, ‘헤’ 하는 어벙한 미소와 구영탄처럼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다.

구체적인 지명과 사건, 얼핏 스치는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 화면까지 <똥개>는 계속해서 2000년대라는 구체적인 시대상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과거’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비단 서울과 비교한 지방 소도시의 불균형적 발전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감독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본질이 현실이 아니라, 실버리텐션 기법으로 가공된, 빛이 바래 희미하고 따뜻해져버린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꽂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억수탕>의 물을 넘고 <친구>의 칼을 통과해 <챔피언>의 주먹으로 단련된 <똥개>는 작은 이야기로 100분여를 지루함 없이 끌고가는, 곽경택이란 이야기꾼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영화다. 여전히 곽경택 감독의 과거를 퍼올리는 기술과 따뜻한 시선은 우리를 웃게 하고, 때론 울게 만든다. 그러나 소멸해버린 감성을 찾아가는 여행은 이쯤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그의 정면을 보고 싶다

순자를 아십니까?세상 험한 일이란게 별거 아니다

“…지딴에는 좀 치는 갑드라.” “와? 병씹어 묵드나?” 진한 화장에 조잡한 손눈썹을 붙이고 껌을 짝짝 씹으면서 등장해 한마디한마디 내뱉는 말이 너무나도 쿨한 정애친구 순자. 낮에는 스쿠터 타고 다방에서 ‘오봉순이’(종업원)를 하고 밤에는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시술’을 하는 그는 몇 장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빈도 대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 중 하나다.

‘순자’역의 홍지영(23)은 맨 마지막까지 고민해서 뽑은 연기자다. 촬영 직전까지 1, 2, 3차 오디션을 걸쳤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안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훓어보자’고 했을 때 홍지영의 서류가 접수됐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경성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한 뒤 SBS <달콤한 신부>와 연극 몇편을 거친 그는 두 사람의 후보가 남은 상태에서 껌씹는 표정과 쿨한 목소리 톤, 엄지원을 상대로 한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최종으로 순자 역에 선택되었다. 가장 많은 웃음이 터지는 장면, 순자가 안마시술소에 온 정우성의 알몸을 샤워시켜주는 신은 사실 연기경력이 별로 없는 배우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성이가 ‘공사’를 하긴 했지만 알몸으로 나타나니까 꽤 긴장하는 것 같더라고. 우성이가 분위기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순자야, 오빠가 공사를 하긴 했는데 물이 묻으면 떨어질 수도 있거든, 너무 놀라자 마라’고 하자 촬영장 안은 폭소가 터졌죠.”

순자는 촬영감독 황기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개>의 등장인물 중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선생님도 안 알아주고 집에서도 신경 안 쓰고 그런 아이들 있잖아요. 별 험한 일 다하지만 결국 지 살길을 지가 다 개척해서 살아가는 아이들, 엄연히 사회라는 걸 구성하는 부류들인데 관심을 못 받는 그들에게 시선을 주고 싶은 욕심이 있나봐요.” 곽경택 감독은 다방 ‘레지’나 하다가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하는 역할이지만 극 안에서 독특한 개성을 주고 싶었고 ‘세상에 험한 일이란 게 별거 아니다’라는 걸 순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이 아이들 꿈이란 게 얼마나 황당한 줄 압니까. 한번은 다방에 차 나르는 아가씨가 한다는 말이, 오빠 저는요, 꿈이 양 허벅지 안쪽에 독수리 날개문신을 하고 다리를 이렇게 휘저으면 꼭 독수리가 나는 것 같은 모양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라고 하더라고. 초반 시나리오에는 넣았다가 뺀 대사인데 순자는 딱 이런 컨셉 속에 만들어진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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