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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의 새 지평 연 김문생 감독
2003-07-11

<원더풀 데이즈> 날자, 날자꾸나

한국영화 제작비의 상한선이 깨졌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원더풀 데이즈>의 총제작비는 126억원. 110억원에 이르렀던 지난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넘어선 수치다. 그동안 제작비 50억원을 넘은 소위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영화들은 일부가 본전치기하고, 나머지 대다수가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그러다보니 <원더풀 데이즈>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더욱이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극장에서 동원한 관객은 많아야 30만명이 고작이었다.(<원더풀 데이즈>가 국내 관객수입만으로 본전을 하려면 400만명이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김문생 (43)감독은 표정이 밝다.

우선은 이 영화의 해외판매가 잘 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미니멈 개런티 50만달러에 판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7~8개 나라에 120만달러에 수출했다. 앞으로 미국·일본·동남아에 팔면 모두 합해 650만달러의 수익을 낼 것이라고 김 감독은 자신했다. “미국쪽과도 이야기가 잘 되고 있다. 제작비 126억원 가운데 20억원은 영어 더빙 비용으로 책정한 것인데, 수입사쪽에서 자신들이 직접 배우를 고용해 더빙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 제작비가 106억원인데, 해외판매 수입 제하고 국내관객 100만~150만명이면 손익분기점에 이른다.”

돈 문제 이전에, 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부심을 얻은 것 같았다. 126억원이라는 제작비는 미국의 <파이널 판타지>(1억3700만달러)나 일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350억원) 보다 많이 적다. <뉴스 위크>는 이런 제작비로 이 정도의 화면을 연출해내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애니메이션)은 조심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유럽쪽에서도 이 영화 화면의 독특함을 높이 사고 있다. 거기에 힘입어 김 감독이 차린 제작사 양철집은, 미국의 저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니켈오디온이 기획한 60부작 TV 애니메이션 <아바타>를 제작하게 됐다. 그림만 그려주는 하청이 아니라, 시나리오와 디자인 등 모든 걸 직접 맡아 ‘제작 양철집’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간다. <원더풀 데이즈>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제작기간이 매우 길었다.

시작부터 7년 걸렸다. CF 안하고 영화 만들자고 마음 먹고 96년에 양철집을 차렸다.(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김 감독은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이면서, 아카시아 껌, 주병진씨가 기침하면 입이 무지하게 커지는 기침약 하벤 광고, 텔레비전에서 기차가 튀어나오는 파브 광고 등 수십편의 CF를 만들어왔다.) 회사를 차리니까 또 CF 주문이 쏟아졌다. 노느니 돈 벌자고 CF도 하면서 <원더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를 다듬었다. 그런데 투자자도 안 구해지고, 진척도 더뎌서 99년말엔 교수직도 그만두고 CF 다 접었다. 2000년 초에 삼성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본격적엔 제작에 들어갔다.

이런 규모의 예산으로 한국에서도 손익분기점 맞추면서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화면이 이 정도 나오면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시 만들면 제작비를 10~20% 정도 줄일 수 있을 것같다. 한국에서 100만~150만명 봐주면 되는데, 꼭 손익분기점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을 10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실사로 찍어 2D, 3D 화면과 섞는 방식은 이전에 못 본 것 같다.

애니메이션 하겠다고 했을 때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다. 그쪽 것은 중량감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질감이 있는 걸 하자. 그걸 실사에서 찾자. 그러면 무거워 보이고 독특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실사, 2D, 3D 세가지 요소가 이질적이면 안 되니까 미니어처 실사 촬영분은 사실감을 죽이려고 채색하고 색보정을 했다. 3D는 너무 반질반질하니까 더 눌렀다. 맵핑을 해서 덜 반질거리게.

유려한 배경화면에 비해 인물들은 좀 덜 유연하다.

2D 캐릭터를 만화체가 아니라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이게 스타일은 좋지만 연기 연출이 잘 안된다. 표정을 많이 주면 이상해진다. 그래서 표정을 덜 주다보니 경직된 느낌이 있다. 미키마우스는 동그라미 세개면 설명이 되는데, 이런 사실적인 캐릭터는 1미리만 어긋나도 이상하다. 그래서 세 주인공은 잘 웃질 못한다. 그런 단점이 있었다. 아쉬운 캐스팅이랄까.

내용을 볼 때, 미래도시 에코반의 전사랄까, 그런 배경 상황 설명이 적다.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의 설명이 싫었다. 그래서 구구한 설명들을 처음 내레이션에 몰아 넣고, 모든 얘길 현재시점으로 하려고 했다. 드라마는 단순하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모티브다. 아주 보편적인. 그걸 이미지로 풀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영화의 특성 아닌가. 극장까지 와서 말 듣고 설명 듣고, 이야기만 듣겠다고 한다면 아쉽지 않은가.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편집을 도왔다는데.

녹음할 때 옆방에서 곽재용 감독이 <클래식>을 녹음하고 있었다. 가서 보니까 곽 감독은 대사를 잘 다듬고 멜로코드를 잘 살려가더라. 그래서 그때까지의 <원더풀 데이즈> 편집본을 곽 감독과 함께 봤다. 곽 감독이 그랬다.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관객들이 그 이미지의 의미에 묶일 거다, 그러면 드라마를 놓칠 수 있다고. 받아들일 얘기 같았다. 그래서 재편집을 같이 하자고 했다. 단 곽 감독에게 내 의도를 먼저 설명했다. 내 영화는 드라마 형식을 차용한 시다, 거대한 서사시다, 그러니 시의 문법을 쫓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고서 함께 편집했다. 거기서 내가 아끼던 이미지 장면 7분을 덜어냈다. 내 피와 땀을 쳐낸 거다. 하지만 흔쾌히 동의했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영화 <원더풀데이즈>는...

오염을 먹고사는 도시, 에코반 음모에 맞서다

AD 2142년.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무너지다시피 했다가 서서히 회복돼가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공해로 가득찬 하늘은 맑은 햇빛 한점도 지상에 비추도록 허락하질 않는다. 인류는 그 전에 오염물질을 에너지원 먹고 사는 도시 에코반을 건설했다. 환경정화를 위한 도시였는데, 이제는 환경이 회복돼가면서 이 도시의 에너지원이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에코반의 지도자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지역을 오염시킬 계획을 세운다.

<원더풀 데이즈>는 환경정화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가 거꾸로 환경을 오염시키려 한다는 역설적 상황을 전제로 한다. 영화에서 ‘원더풀 데이즈’는 공해가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 날을 뜻한다. 지구를 여전히 오염상태로 두려는 에코반의 음모에 맞서, 에코반 바깥의 사람들이 ‘원더풀 데이즈’를 찾기 위해 싸운다. 그러니까 음울한 묵시록이면서도,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라는 판타지가 있는 서정적인 SF영화다.

에코반의 음모에 맞서는 중심 인물은 수하다. 에코반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어떤 사연으로 거기서 쫓겨났다. 수하의 옛 친구 제이는 에코반의 경비대원이다. 수하가 죽은 줄 알고 있던 그녀는 에코반에 침입한 수하를 만나면서 그를 향한 연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제이를 사랑하는 에코반 경비대장 시몬이 수하를 잡는 데에 앞장선다. 영화는 셋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여타 멜로드라마와 달리 대사가 적고 연출이 담백하다. 그래서 이 삼각관계가 되레 배경 같고, 미래 사회의 풍경이 주인공처럼 다가온다.

화면의 스케일에 비해 이야기의 규모가 적고, 드라마가 담백함을 넘어 성긴 듯한 느낌을 주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염된 지구와 맑은 하늘을 대비시킨 발상과 그걸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화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황무지가 되다시피한 지구, 그 황폐한 모습이 묘하게 사람을 잡아끈다. 공해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열릴 때는 가슴이 설렌다. 김문생 감독은 “관객들이 극장을 나왔을 때 하늘 한번 쳐다보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그건 그 하늘 아래 사는 자신들을 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그 의도를 살려낸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