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룸에 있었던데다 경비원도 많아 걱정을 안 했는데….” <지구를 지켜라!>로 제25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2위에 해당하는 감독상을 수상한 장준환 감독이 트로피를 도난당해 빈손으로 귀국했다. ‘사건’은 지난 6월29일 시상식 직후 열린 파티장에서 발생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이날 받은 은게오르기상 트로피를 포함해 여권, 비행기표, 디지털카메라 등이 들어 있던 배낭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황망한 장 감독은 여기저기에 수소문을 해봤지만 배낭은 새벽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현지 대사관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음날 인천행 비행기를 타는 것도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래도 트로피만큼은 되찾고 싶었던 장 감독은 영화제 관계자에게 재지급에 관해 문의했으나, “현재로선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조직위원장에게 메일을 띄워 ‘자비를 들여서라도 트로피를 다시 받겠다’는 의사를 전할 생각이다. 그가 트로피를 갖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크랭크인 전 고사 올리는 자리에서 ‘재밌게 만들고 만든 뒤에는 자랑스런 영화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공언했는데, 만들 때도 재미가 없었던 것 같고 흥행도 안 돼 둘 다 못 지킨 셈이었다. 그런데 대종상과 모스크바에서 상을 받았으니 약속 하나는 조금이라도 지킨 것 같다”는 점.
사실, 트로피 분실이 아니더라도 장준환 감독은 지독히 ‘재운’(財運)이 없었다.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흥행 참패를 기록했으며, 대종상과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상을 거머쥐었지만 상금은 없다. 그가 건진 ‘물질’이라면 모스크바영화제의 후원사인 코닥으로부터 신인감독상과 함께 받은 필름 1만미터뿐이다. 이 모든 게 외계인의 음모가 아니기를.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