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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매트릭스2 리로디드>

만약 그 예언이 옳았다면 어땠을까? 오랫동안 기다려온, 99년의 메가 컬트 히트작품 <매트릭스>의 속편인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2 리로디드>는, 영화의 두 번째 대목을 예측하며 시작해 상당히 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완결편인 다음 작품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 대한 홍보로 끝을 맺는다(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 전체가, 비디오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에 대한 홍보물일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1편에서 보았던 거의 모든 일들이 다시 일어난다. 2편은 매트릭스의 지리적 묘사와 다양한 영역에 대한 규칙들을 한결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만듦으로써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관객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매트릭스>에서 그다지도 새로웠던 것들이 이젠 편안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진다.

온갖 문화들이 섞여 공존하는 듯한 시온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할애된다. 시온이 결국엔 또 하나의 디지털 환상물(computer induced illusion)인 것으로 밝혀질 것이라는 비평이론가 슬라보예 지젝의 유명한 예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깔때기 모양의 구조물은 철골로 세운 매트릭스와 가장 닮아 보인다.

<매트릭스>는 신비로운 문들과 복도, 그리고 무대 뒤 공간 등으로 인해 수수께끼처럼 얽혀 있었다. <매트릭스2>는, 불길한 가상현실이라기보다는 로그 프로그램들과 라이벌 컴퓨터 코드, 그리고 시스템 이상 등이 들끓는 비디오 게임 경기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즉, 이 작품은 도스시대의 디즈니 유물 <트론>이 제기한 문제를 확장하고 세련되게 다듬은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매트릭스>를 특징지웠던, “‘실재’(reality)에 대한 설득력 없는 향수”는 별 감상적인 분위기 없이 탈락됐다. 그건 잘한 일이다. 새로운 캐릭터들을 여럿- 미친 듯이 복제해가는 에이전트 스미스(휴고 위빙, 여전히 발끈하고 울컥하는 성격이다)를 제외하고라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트릭스2>는 과다한 드라마를 가지고 아양을 떤다. 해커 토머스 앤더슨 덕분에 메시아일지도 모르는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비닐로 몸을 두른 냉혹한 얼굴의 수호천사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입술을 맞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매트릭스2>는 전편보다 더 섹시하며, 최소한 땀은 더 물씬하다. 장중한 반역자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마저 원기왕성한 캡틴 니오베(제이다 핀켓 스미스)에게 추파를 던지며 그의 크롬 돔을 번뜩인다. 키메이커(랜달 덕 킴)를 찾아내기 위해 네오는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하는 에이전트 몰에게 열정의 키스를 바치게끔 강요받는 등(<고스트 버스터>로부터 따온 컨셉이다), 그 이상의 로맨틱한 사건들도 벌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으로 인해 네오가 좀더 표현력 풍부한 인물로 변모한 것은 아니며, 복제된 스미스가 내뱉는 일상적인 언어폭력에 대해 더 유연해진 것도 아니다: “미스터 앤더슨… 아직도 정말 중요한 근육은 안 쓰고 쓸데없는 것들만 잔뜩 사용하고 있나?”

<매트릭스2>는 아마도 조지 부시의 예산 못지않게 엄청난 흥행수익을 벌어들일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2>는 <매트릭스>의 팬층을 갈라놓아버릴 위험도 가지고 있다. <매트릭스>는 멀티플렉스 죽돌이 죽순이들에서, 어두운 행성의 진실을 믿는 자들과 상아탑의 완고한 인간들까지, 아주 판이한 여러 층의 팬들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요소들은 또한 얼마 안 있어 다 서로 떨어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 후끈 달아오르는 영화마술의 신선한 초안은 곧, 진창같이 질척한 형이상학의 침전물만 남기게 될 것이다.

천재적인 무술안무가 원화평에 힘입어, 영화는 대단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시온의 모든 이를 불러모아 집회와 파티를 벌이게(세계에서 가장 큰 레이브 파티랄까) 하는 북소리가 들려오는 신(scene)은, 이 분야의 거장 원화평이 공을 들인 결과, 이 영화의 스타들을 진정할 별들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순수한 비디오 게임적 충격과 찬탄을 위해서라면, 가장 흥분되는 신은 헬멧도 안 쓴 트리니티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일 것이다. 자동차들은 주변에 켜로 쌓이고, 가을낙엽처럼 온통 흩날린다.

그러나 여전히, <매트릭스2>는 아무 생각없는 쾌락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기술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technophobic) 사이버 디스토피아 신봉자이면서도 하이테크 및 컴퓨터 세계와 깊은 연관이 있는 영화를 만드는 작가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기계란 전적으로 선한 것도 전적으로 악한 것도 아니라는 힌트를 줌으로써 명백한 역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매트릭스3 레볼루션>을 내놓기 위해, 계시적인 사이보그 공생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말이다. 자신이 진정 더 원(The One)인지의 여부와 그렇다면 더 원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를 네오가 고뇌할 때, 워쇼스키 형제는 자유의지와 운명론 사이의 대단히 까다로운 수수께끼에 골몰하고 있다. 비위 상할 정도로 이성적인 프랑스 프로그램(람베르 윌슨)은 원인과 결과라는 뒤집을 수 없는 준엄한 인과관계를 신봉하지만, 직관적인 칸트주의자로서 네오는, 일상적 관계란 오로지 일상적 관계로 현상할 뿐이 아니겠는가 하고 의심한다. 이런 개념들이 굳건한 철학을 이뤄낼 만큼 충분한 시간을 스크린 위에 머물지는 못하지만, 믿음직한 모피어스는 언제나 영화의 기본적인 내러티브를 해석하고 서술한다고 믿어도 좋다. <톱 햇>(Top Hat)의 남창처럼, 그는 기회란 운명을 뜻하는, 바보의 이름이라고 믿는다.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은 매트릭스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트릭스 - 전편에서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세계로서, 우리를 통제하에 두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정의됐었다- 는 확실히 모든 비유들의 어머니다. 매트릭스를 ‘스펙터클 연합’(Society of the Spectacle)이라고 읽어도 될까? ‘자본’이라고 해석한다면 또 어떨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발전된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업데이트된 ‘패럴랙스 기업’(parallax corporation)이라고 보면 또 어떨까? ‘오락 국가’(The National Entertainment State)는 또? 지젝의 ‘거대한 타자’(Big Other)는?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Empire)이라고 본다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라 운동’(Precession of Simulacra)이라고 해석한다면 또 어떨까?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모두가 다 가능하다. 나아가, 매트릭스는 미디어 세계의 새로운 전체주의를 비유하기도 한다. 대체 그 누가 감히 참여를 거부할 만큼 자유롭단 말인가?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을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에 대한 또 하나의 답변은, <매트릭스2>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자매회사가 발행하는 <타임>이, 시사회가 있던 주에 마련한 커버스토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영화 봤다! 우리가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그 영화를 봤고 또 비디오 게임을 해본다!” 그러면 모피어스는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세계에서 가장 새로운(가장 최근의) 환상은, 바로, 새로운 것들(뉴스)에 관한 환상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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