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총을 달라
총포 관련 법안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영화계 내에서 일고 있다. 실제 또는 모의 총기 사용 규제 법안이 지나쳐 촬영일정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작 일선의 영화인들은 ‘총포·도검·화약류 단속법’(이하 총포법)의 일부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의 안전을 목적으로 총포, 도검, 화약류, 분사기, 전자충격기, 석궁을 제조, 거래, 소지, 사용하는 등에 있어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이 법에 따르면, 영화 촬영시 실제 총기(위험요소가 제거된 총기도 포함됨)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동법 시행령 14조는 이들 물건을 소지할 수 있는 허가 범위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영화 촬영에 해당하는 조항은 없다). ‘소지’규정이 이 정도니 ‘제작’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제작 중인 영화의 촬영에 쓰이는 총기는 모두 가짜일까. 물론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M1 소총을 비롯, 실제 총기 43정을 미국 깁슨사에서 대여했다. <실미도> 또한 홍콩에서 칼빈 10정을 포함, 23정을 들여왔다. 여기서 잠깐. 현재 총포법은 영화 촬영시 실제 총기 사용을 금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해외에서 총을 반입할 경우, 총기 소지 허가증이 없는 영화사들로선 국내 총포사를 통할 수밖에 없다. 촬영 때마다 영화사는 관할 경찰서에 신고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는 문제의 법조항이 이미 사문화됐음을 보여주는 예다.
총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영화계의 주장은 단지 현실과 법의 일치를 위해서가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으로 인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대여료로 미국 깁슨사쪽에 한달에 2500만원씩 지불하고 있다. 이성훈 프로듀서는 “이건 누가 봐도 외화 낭비”라고 잘라 말한다. 국내 총포사를 통해 계약이 이뤄지다보니 총기를 제때 받지 못해 촬영 일정이 지연돼도 항의할 곳조차 마땅하지 않다. 반면 미국쪽 렌털사는 “총기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다”며 계약 전에 대여료에 버금가는 보증금을 요구한다. <실미도>의 이민호 프로듀서는 “보증금을 주는 것이 싫어 일부러 홍콩쪽과 거래했는데, 이번엔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털어놓는다.
모의 총포를 영화 촬영에 사용하는 데도 법적 제약이 많다. 일단 모의 총포에 대한 규정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이다. 법령에 따르면, “(실제 총포와) 아주 비슷한 것”이 전부다. 따라서 범죄에 이용되거나 인명, 신체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 여부가 뒤따르는데 여기에는 자의적인 기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실미도> 제작진의 경우, 해외 로케이션을 앞두고 일본에서 들여온 모의 총기 AK 27정이 실제와 너무 똑같다는 이유로 해외로 반출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결국 “멀쩡한 모의 총기를 누가 봐도 장난감임을 알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야 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서야 반출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똑같은 총을 들여올 때 아무런 말썽이 일지 않았다는 사실, 명확한 기준이 없음에 대한 증명이다.
영화계는 법제를 정비할 경우 “군이 민간에 총포를 대여하거나 불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참고로 군당국은 총포 관리를 군수관리법에 의해 하고 있지만 이를 민간에게 대여 또는 불하할시 점유권의 이동이므로 현행 총포법의 관리 대상이 된다). 이성훈 프로듀서는 이와 관련해 “관계당국은 쓰지 않는 총포를 무조건 폐기처분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국가적으로 이득일지 따져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홍성원 서울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은 “영화진흥위원회 등의 공적기구에 대여 권한을 부여하되 경찰청, 군 등과 함께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우려하는 사회적 파장은 제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