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도 없다. 종횡무진하며 인물과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비춰주는 카메라워크도 없다. 시신경이 느슨해질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장면과 장면 사이를 매끄럽게 건너뛰는 현란한 편집도, 록시의 허름한 방에서 벨마의 쇼 무대, 어두운 감옥, 변호사 빌리의 고급스런 사무실과 법정으로 자유자재로 바뀌는 세트도 없다. 하나의 세트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와 시공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영화 <시카고>는, 같고 또 다르다. <시카고>는 1920년대의 시카고, 각각 다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보드빌 스타 벨마 켈리와 스타 지망생인 록시 하트, 두 여성의 재판과정을 통해 쾌락과 욕망의 베일에 쌓인 당시 미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풍자를 화려한 재즈 선율과 역동적인 춤의 언어로 풀어낸 쇼. 7월2일부터 8월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런던 투어팀의 내한공연으로 뮤지컬 <시카고>가 무대에 오른다.
알려져 있다시피 뮤지컬 <시카고>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화제를 뿌렸던 롭 마셜의 영화 <시카고>의 원작. 발군의 안무가이자 <캬바레> <로이 샤이더의 재즈 클럽> 등 60∼70년대에 춤과 음악의 관능적인 황홀경을 담아낸 뮤지컬영화의 감독으로 유명한 밥 포스, 작사가 프레드 엡과 작곡가 존 캔더가 함께 1975년에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뮤지컬로 인기를 누렸던 이 작품은 96년, 포스의 스타일을 기본으로 새 안무가 앤 레인킹이 가세한 리바이벌 버전으로 토니상을 휩쓴 이래 지금까지 뉴욕과 런던에서 인기리에 공연되고 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공연예술의 메카라 할 만한 런던의 웨스트엔드, 거의 6년 동안 <시카고>를 상연했던 아델피극장 등에서 공연해온 웨스트엔드의 투어팀이 선보일 이번 무대는 바로 이 리바이벌 버전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을 했다 해도, 뮤지컬 <시카고>의 스펙터클은 영화에 비해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솔직히 영화화되기 전에 <시카고>를 런던에서 봤을 때, <레 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거대한 세트도 없는 무대에서, 잘 들리지 않는 영어 노래와 춤 자체로 끌어가는 이 뮤지컬이 좀 낯설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5, 6, 7, 8”을 신호로 “빠밤빠밤빠밤 빠밤” 하는 금관악기와 재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한 공간에 울려퍼지는 순간부터 서서히, 뮤지컬 <시카고>는 영화와는 다른 감각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영화만큼 조명이 화려하진 않지만 화사하고 경쾌한 빅밴드 재즈의 선율과 리듬이 피부로 다가오는 의 순간, 6명의 여성 댄서가 핀 조명 아래서 철창도 없이 의자만을 소품 삼아 육감적인 동작의 유희를 펼치는 , 사람과 사람의 맺고 끊는 몸짓의 리듬으로 아수라장 같은 록시의 기자회견장을 재현하는 등 어떤 여과없이 맞닥뜨리는 탄력적인 육체의 역동성, 관능적인 춤, 음악의 생생한 호흡은 뮤지컬의 현장성이 빚어내는 마술이라 할 만하다. 영화의 빠른 편집과 카메라앵글 밖으로 밀려났던 <시카고>의 춤과 음악의 전모, ‘올 댓 시카고’ 를 한눈에 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챙겨볼 만한 공연이다(문의: 신시뮤지컬컴퍼니 02-577-1987, 전화예약: 티켓링크 1588-7890).황혜림 blau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