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없이 흘러가는 하루, 지루하기 짝이 없는 생활, 평범한 내 모습이 진저리치게 싫어지는 어느 날에는, 귀청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흥겨운 로큰롤에 맞춰 미친 듯이 헤드뱅잉을 하며 저 아우성치는 대중들의 손에 기꺼이 내 몸을 맡겨보는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알렉스 프로야스의 신작 <크레이지 록스타>는 일반적인 ‘스타 탄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음악영화와는 정확히 반대의 길을 걷는 영화이다. 시드니 교외의 한적한 동네에서 별볼일 없어 보이는 청년들은 창고 같은 방 안에서 연습에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이토록 열성적인 그들이 설 무대는 안타깝게도 없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매니저 브루노는 클럽을 돌아다니며 거의 우격다짐으로 밴드의 무대를 마련하려 하지만,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심지어 실력도 제대로 검증받아본 적 없는 그들의 신세란 한없이 처량하기만 한 것. 밴드의 리드 싱어 프레디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억지로 시킨 각종 음악교육에 진저리를 칠 정도로 음악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으나, 어느 날 베이비 시터와 함께 들른 레코드 가게에서 로큰롤을 접한 이후 그만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린 강렬한 기억을 가지고 로큰롤계에 투신한 젊은이다. 그러나 이미 시드니를 점령해버린 포카 슬롯 머신의 열풍은 대부분의 클럽과 술집에서 라이브밴드가 설자리를 잃게 했고, 그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의 꿈은 그저 제대로 된 무대에 한번 서보는 것뿐이다.
실제로 한때 밴드에 몸담았던 알렉스 프로야스가 자전적 기억을 되살려 연출한 이 로큰롤 판타지는 푸른색과 노란색, 붉은색 등 원색 계열의 색감이 주조를 이루는 호주영화 특유의 강렬한 색감을 자랑한다. <다크 시티>나 <크로우>에서 보여주었던 음울한 상상력은 이 발랄한 록밴드의 성공을 향한 좌충우돌의 모험에 걸맞게 좀더 깜찍하고 스피디한 이미지들로 변모한다. <크레이지 록스타>는 마치 MTV를 보는 듯 화면을 온갖 이미지로 꽉꽉 채우는 프로야스의 연출에, 영화의 80% 이상을 디지털 특수효과로 치장한 탓에 먹기 아까운 예쁜 케이크처럼 화려하고 달콤하다. 로큰롤의 세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인 마약, 여자, 사기꾼, 우울증,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은 재치있게 버무려져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현실의 이미지 속으로 제멋대로 치고 들어오는 판타지들은 반쯤은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광기어린 로큰롤의 세계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마약과 술, 우울증과 섹스에 빠져 지내면서도 건강하고 천진난만하며, 쿨하고 도전적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결코 성공을 위해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않는 순수함에서 비롯된다. 현실 속에서는 삼각관계나 중증의 우울증, 임신 등 갖가지 골칫덩이를 싸안고 허둥대며 지내는 그들이지만 로큰롤을 연주하며 대중들과 교감하는 그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고 당당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대형 무대에 선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곡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순간, 로큰롤을 즐기러 온 대중들 앞에 섰다는 기쁨 하나만으로 열렬히 도취된다. ‘비록 연주는 형편없었지만 우리는 꼭 대중 앞에서 연주해야만 했다.’ 프레디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이렇게 생각한다.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스타보다는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마니아가 되고 싶었던 그들에게 로큰롤은 일용할 양식이자,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영화의 원제인 ‘창고 시절’(Garage days)은 무대에 서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비록 조그만 무대이더라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담은 극중 비디오테이프의 제목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 중 누구도 로큰롤 스타가 될 운명은 아니었지만, 골방에 틀어박혀 꿈을 키우던 나날들은 화려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보다도 더욱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젊은 날의 기록이다. 김용언 mayham@empal.com
Garage Days, 2002년감독 알렉스 프로야스출연 킥 게리, 마야 스탠지, 피아 미란다, 러셀 딕스트라, 브렛 스틸러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 NTSC오디오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출시사 이십세기 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