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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개봉 <캐리비언의 해적> 조니 뎁 인터뷰
2003-07-01

"18세기 해적들은 21세기 록스타"

가까이에서 마주한 조니 뎁(40)의 표정엔 보는 이들을 넋나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명상에 잠긴 인디언처럼 눈빛이 평온했다. 텅 빈 것 같으면서 깊었다. 어떤 주술을 숨겨놓은 듯도 한데, 막상 얼굴은 무심했다. 인터뷰 내내 반듯하게 앉아 익숙한 솜씨로 입담배를 말았고, 조그만 테이블에 모여앉은 7~8명의 기자 중 누구와도 잠깐 이상 눈을 맞추질 않았다. 답변은 차분하면서도 요지가 뚜렸했다. 평온함, 무심함, 예절바름….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조니 뎁의 분위기는 다른 스타들과 달랐다.

1억2500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 <캐리비언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고어 버번스키 감독, 한국개봉 9월 예정)에 그가 출연한 건 의외다. <스피드> <가을의 전설>처럼 흥행코드가 분명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거절하면서 조니 뎁이 선택한 건 <가위손> <길버트 그레이프> <에드 우드> <슬리피 할로우> 등 어딘가 비주류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들이었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은 인터뷰에서, 4살짜리 그의 딸과 이번 영화의 선택이 연관이 있냐는 질문이 나왔고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 “내 출연작 중에 애들이 볼 영화가 많지 않다. <라스베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 같은 건 10~20년 뒤에나 볼 수 있을 영화이고. 애들과 같이 보고 공감하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단, 막스브라더스의 하퍼 막스처럼 애들이 공감하면서도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영화.”

<캐리비언…>은 해적들의 이야기에 관군의 추격과 로맨스가 끼어든다. 일군의 해적들이 저주를 받아 달빛 아래서 해골로 변한다.(그러고 보면 B급 영화의 냄새도 있다.) 조니 뎁은 다른 해적들로부터 배신당해 혼자남은 선장 잭 스패로우로 나온다. 조니 뎁 답게 그는 자기의 아이디어로 캐릭터를 윤색했다. “18세기 해적에 관해 자료를 뒤지다보니 그들이 잔인하고 범죄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전설 속에 감춰진 모습이 있었고, 그건 록스타의 자유분방한 이미지와 닮았다.” 조니 뎁은 록그룹 롤링 스톤즈의 베이스 주자 키스 리처드를 떠올렸다. “그의 아름다운 자신감이랄까, 무대에 올라올 때 스스로를 연출하는 태도, 우아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그걸 잭의 캐릭터에 끌어들였다.” 영화에서 잭은 항상 취한 듯 비틀댄다. 그 비틀댐에는 능청과 과시가 있다. 냉정하고 합리적이기보다 감각적·즉흥적이다. 잭의 캐릭터에 대한 조니 뎁의 표현이 재밌다. “그는 파티에서 마지막에 떠나는 남자다. 마티니잔 들고 비틀대면서.”

아무래도 1억달러가 넘는 대작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다. 조니 뎁은 “블록버스터와 다른 영화의 차이는 내용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많은 다른 의견들과 부닥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잭의 캐릭터가 영화를 망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고, 나는 믿어달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같은 날의 인터뷰에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조니는 분장도 자신의 주문대로 했고, 의상도 직접 골라왔다”면서 “조니가 출연한다는 건, 이 영화가 보통의 디즈니 영화(이 영화 제작사가 디즈니이다)와는 다름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슈팅 라이크 베컴>의 여배우 키라 나이틀리는 해적을 ‘18세기 록스타’에 빗댄 조니 뎁의 해석을 좇아 자신의 역할을 “해적 그루피”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니 뎁은 영화에서 키라 나이틀리와의 로맨스를, <반지의 제왕>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올란도 블룸에게 넘겨준다. <조니 뎁의 돈 주앙>(95년작)에서 ‘돈 주앙’이었던 그가, 외딴 섬에 미녀와 둘이 남아선 혼자 술에 취해 뻗어잔다. “아쉬울 건 없고, 사랑이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선 캐릭터가 중요하니까….” 로스앤젤레스/임범 기자 isman@hani.co.kr,사진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