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멕시코영화제 ‘비바 멕시코!’가 7월8일부터 13일까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주한 멕시코대사관의 주최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최근 2∼3년 사이 발표된 6편의 장편영화와 5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행사에서 단연 주목되는 작품은 1970년대 미국 서브컬처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엘 토포>다. 국내에서는 필름으로 처음 상영되는 이 작품은 70년 발표된 이후 컬트영화의 고전으로 추앙받아왔다.
1930년 칠레 태생으로 50년대 중반 파리로 건너가 마르셀 마르소, 페르난도 아라발, 뫼비우스 등을 파트너 삼아 마임과 초현실주의 연극운동, 만화 등에 참여했던 조도로프스키는 이내 멕시코로 넘어가 첫 장편영화 <판도와 리스>를 발표했다. 1970년 완성된 두 번째 장편영화 <엘 토포>는 그해 12월 미국에서 상영되며 일부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 영화는 뉴욕 등에서 매일같이 상영되며 존 워터스의 <핑크 플라밍고>와 함께 미국의 ‘심야극장’ 시대를 개척한 작품으로 영화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서부극의 외양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엘 토포라는 이름의 주인공(감독 자신)이 멕시코의 사막에서 4명의 총잡이 고수들을 차례로 물리치는 과정을 그린다. 과도한 폭력과 과감한 노출,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가득한 <엘 토포>는 ‘창세기’, ‘잠언’, ‘시편’, ‘묵시록’ 등 성서의 구조와 기독교적 구원에 대한 갈망을 영화 속에 녹이면서도 곳곳에 오컬트, 또는 동양적 종교세계를 심어놓아 섣부른 해독을 불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60년대와 70년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특히 후반부 장애인들이 동굴 밖으로 쏟아져 나가다가 ‘정상인’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장면은 감독의 주제의식이 두드러지게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영화의 제목(El Topo는 스페인어로 두더지를 의미한다)과 시작 부분의 ‘두더지는 태양을 찾아 땅속을 파고 다닌다. 하지만 태양을 보면 두더지는 눈이 멀어버린다’는 자막과 연관지을 때 이 영화가 당대의 혁명적 에너지를 수용하고 있음은 명징해진다. 당시 이 영화를 본 존 레넌이 감동받아 매니저인 앨런 클라인에게 이 영화의 판권을 사 배급을 하게 했으며, 차기작 <홀리 마운틴>의 제작비 100만달러를 조달케 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조도로프스키가 이 기괴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멕시코라는 공간이 원천적으로 배태한 초현실주의적 성격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이젠슈테인이 <비바 멕시코>를 만들기 위해 헤맨 곳도, 브뉘엘이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곳도 멕시코였다. 페르난도 데 푸엔테스, 후안 이바네즈, 아르투로 립스테인 같은 개성있는 감독들에 이어 최근 <이 투 마마>의 알폰소 쿠아론, <아모레스 페로스>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등이 세계 영화계에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하게 된 것도 멕시코의 ‘지기’(地氣)와 관련이 있을 듯싶다.
이번 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되는 작품들 또한 이처럼 다른 상상력과 새로운 영화언어의 단초를 보여준다. 마리사 시스타츠 감독의 2000년작 <제비꽃 향기>는 어처구니없이 성폭행 당하는 사춘기 소녀를 통해 멕시코 사회의 스산한 뼈대를 드러낸다. <밤하늘에 쓰여진>은 도발성으로 이름난 하이메 움베르토 에르모시오 감독의 2000년작으로 영화의 세계를 신비롭게 자기반영하는 유쾌한 영화다. 연극연출가 출신 기타 쉬프테르 감독이 2001년 만든 <달의 얼굴들>은 여성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5명의 여성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 아나 토렌트 등 스페인어권의 유명배우들이 등장한다. 라파엘 몬테로 감독의 <조각난 마음>(2001)은 가난한 가족의 삶을 코믹하면서도 슬프게 담았으며, 파비안 호프만 감독의 <빠치또 렉스>(2001)는 대통령 후보를 암살한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정치코미디다.(문의: 02-745-3316, http://www.cinematheque.seou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