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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감독의 특별한 블록버스터, <헐크>
홍성남(평론가) 2003-07-01

돌이켜보면, 리안 감독은 적어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만한 프로젝트들에 손을 대면서 자기 필모그래피의 상당 부분을 채워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가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스크린 위에 재현해보겠다고 했을 때(<센스, 센서빌리티>, 1995),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사회에 대한 얼음장같이 차가운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했을 때(<아이스 스톰>, 1997), 그리고 우아한 무협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을 때(<와호장룡>, 2000), 적지 않은 이들은 그 프로젝트들이 과연 어떤 ‘성취’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러워 했다. 리안이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가족과 세대의 문제를 따뜻한 코미디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영화들에서 빛을 발했던 영화감독이라고 그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아놨던 사람들에게 앞서 말한 프로젝트들은 그 이미지와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들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리안이 세인들이 가짐직한 의심들을 불식시켜내는 쪽이었고, 그런 면에서 리안은 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이제 그 리안이 또다시 그와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프로젝트를 가지고 돌아왔다. 스파이더 맨이나 엑스맨, 데어데블 같은 만화 속 슈퍼 히어로들이 연이어 스크린에 등장하는 판이니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불러온대도 이상할 일은 전혀 아니지만, 그를 스크린의 주인공으로 이용할 이가 리안이라면 여전히 우리는 ‘그래?’ 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가 앞서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았던 것처럼 독특하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아온 영화감독임을 숙지한다면 의심은 기대와 미묘하게 뒤섞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작인 <와호장룡>에서 무협세계의 어떤 영화적 황홀경을 보여줬던 리안이 이번에는 블록버스터를 가지고 어떻게 자기 식으로 소화해냈을까, 하는 기대가 아마도 <헐크>를 대하는 사람들이 가질 만한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나는 이것이 통상적인 유의 영화는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리안의 말처럼, 전체적으로 봤을 때 <헐크>는 블록버스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의 통상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리안의 의지가 읽히는 영화다. 여기서 그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계란 고전 비극의 그것과 유사한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광분하면 덩치 큰 녹색 괴물이 되어 파괴적 에너지를 마구 발산해대는 브루스에게서 리안이 본 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 폭력에의 욕구를 숨기고 사는 본모습의 인간이었다. 또 한편으로 리안은 브루스에게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운명의 힘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고 그것과 싸워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을 보았다. 그래서 리안의 <헐크>에서 그려지는 브루스/헐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인물이면서 오이디푸스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적 인물이 어떤 사연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고 또 어떤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 영화는 이 인물을 들여다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이며 비교적 느릿느릿하게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그렇다면 <헐크>가 비극의 세계에 떨어진 한 인물의 탐구에 성공한 영화인가 하면 그렇게 평가하긴 좀 힘들 것 같다. 전반부에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우리는 ‘도대체 브루스/헐크의 진정한 적대자는 누구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만 영화가 끝나도 그 의문은 (적어도 영화의 구성 자체에 의해서는) 잘 풀리지 않는다. 브루스/헐크의 적은 자신의 힘으로 제어되지 못하는 그 자신일 수도 있고, 그에게 나쁜 운명을 안겨주고는 결국 그와 대결하는 사악한 아버지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그를 이용해먹으려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브루스/헐크가 적들과 맞붙어 갈등하는 적대적 상황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밀도있게 그려내지 못한다. 단지 영화는 텍스트를 두껍게 해줄 수 있는 탐구의 시간을 버는 체하며 내러티브의 원활한 전개를 방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헐크>의 전반부가 스토리를 느리게 진행해간다면 후반부는 그와 비교해 아예 스토리가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 여름 시즌의 블록버스터를 반기는 관객이 메인 이벤트라고 부를 만한 화려한 스펙터클의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전투기를 이끌고 공격해오는 군과 자신보다 더 거대한 괴물로 변한 아버지 등을 상대로 헐크가 벌이는 ‘액션’에 가장 많은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거대한 액션이 연이어 펼쳐지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에게 <와호장룡>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데 일조를 했던 대나무 숲에서의 우아한 결투장면처럼 보는 이의 눈을 확 잡아끄는 장면이 <헐크>엔 없다는 것이다.

내러티브의 전개상에서도 결여되었던 ‘폭발적인 어떤 순간’은 오로지 스펙터클을 위해 마련된 시점에서도 찾아오지 않는다. 음울하긴 하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 1, 2편의 그 매력적인 음울함에는 못 미치고 스펙터클을 자랑하면서도 <매트릭스> 시리즈의 그것에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 듯한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리안의 예의 특출한 재능이 십분 발휘되진 못한 듯하다.

만화에서 영화로

<헐크>의 약사디지털 기술로 원작에 가까운 녹색괴물 재창조

“괴물이긴 한데 좋은 남자이기도 한 캐릭터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프랑켄슈타인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섞어놓은 듯한 헐크라는 캐릭터는 이런 착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스탠 리와 잭 커비는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1962년에 나온 만화 <엄청한 헐크>(Incredible Hulk)에서 녹색 괴물 헐크를 처음으로 등장시키게 된다. 만화로 대단한 인기를 끈 <헐크>는 1977년부터 나온 인기 TV시리즈를 통해 생명력을 연장해나갔다. 이 시리즈에서 헐크 역을 맡은 인물은 미스터 유니버스 출신의 건장한 보디빌더 루 페리뇨.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너로도 유명한 이 사람은 리안의 <헐크>에도 잠깐 얼굴을 내비친다.

<헐크>의 영화화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제작자 게일 앤 허드가 10여년 전부터 만들어보겠다고 별러오던 프로젝트. 예산과 창조력 등의 문제로 계속 미뤄오던 것이 최근에야 리안을 감독으로 초대해 성사된 것이다. 우리에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TV시리즈와 비교해 리안의 <헐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디지털 기술로 배우가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큰 체격을 가진 (그래서 원작에 좀더 가까운) 헐크를 ‘재창조’해냈다는 것. 69명의 테크니컬 아티스트 외에도 수십명의 스탭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헐크는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 가운데 하나. 스크린 위에 재창조된 이 녹색 괴물은 대단히 유연한 움직임과 함께 심지어 꽤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도 보여준다.

리안이 내린 결정 가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주인공으로 에릭 바나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배우를 기용했다는 점. 자국에서는 스타이지만 미국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그를 기용하면서 리안은 이 영화에 스타는 굳이 필요없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최고의 스타는 헐크이다.” 여하튼 <헐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나는 속편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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