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곧은 길도 만날 수 있겠고 휘어지고 후미진 길도 걸을 수 있으리라. 그렇듯 사람살이도 평이한 듯하다가 굴절되어지고 더 나아가 질곡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일도 다반사, 어찌 ‘새옹지마’의 탓을 늘어놓고 푸념만 할 수 있겠는가만, 어찌보면 작금의 내 심사와 처한 상황이 그 파란과도 몹시 흡사해 실로 난감한 마음으로 이렇듯 푸념섞인 하소연을 늘어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살며 영화를 택한 순간부터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고, 사람들과 섞여 나눴던 술과 정담들이 즐거웠을 뿐 본질적으로, “과연 내가 이뤄놓은 어떤 영화적 성과가 있어 그 기쁨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감흥이 있었던가?” 자문해보면 그것도 별반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무능 탓이 아니라 정답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두려워서였던 것 같고, 그 정다움 속, 없는 사기 복돋워주던 그 호들갑 속에는 정정당당 열심히 임하자는 내 동지들의 속내 깊은 격려가 뿌리박고 있었던 것도 같다. 탄력을 받은 호기가 객기로 변했는지 치열하자는 맹세는 어느덧 교만이 스며들어 불성실로 젖어들었고, 그 단정적 결과물이 지지난주 ‘충무로 다이어리 김해곤 칼럼’이다. 지상학 선생님의 계간지 인터뷰 기사를 도용, 표절해 <씨네21>에 본인의 이름으로 게재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진심으로 인정한다.
아울러 지상학 선생님을 비롯한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씨네21>을 열렬히 애독하는 독자들에게도 송구하고 죄스러운 마음 전하고 싶다. 굳이 그 연유를 말하자면, 지방에서 작업을 하던 중 <씨네21> 마감일임을 늦게야 알았다. 급한 마음에 나와 한집에 살고 있는 후배에게 전화를 해 “작업실 책상 위에 이번주 보낼 칼럼 내용 메모가 있으니 네가 살을 좀 붙여 이번만 대신 써다오” 하며 불성실한 떼를 썼고, 그 후배는 내 강권에 못 이겨 승낙했는데, 경험이 없는 친구라 그만 지상학 선생님의 인터뷰 기사를 표절해버린 모양이다.
알고 있다, 그것도 내 잘못임을….
평생을 외길로 임해오신 분의 수십년간의 연구와 학문적 성과를, 사연이야 어찌 됐든 내 것인 양 도절한 죄, 지금도 죄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필을 시킨 책임 또한 표절한 죄보다 못하지 않으니 이제 나는 그 책임을 지고 ‘충무로 다이어리’ 코너의 글을 닫으려 한다.
다시 한번 지상학 선생님께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리며, 지금껏 쌓였던 <씨네21>의 명성과 명예가 저로 인하여 오해되거나 의심받는 상처가 연일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건승들 하십시오! 김해곤/ <파이란> <블루>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