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의 메카 LA에는 연중 크고 작은 영화제가 열린다. 그러나 이 영화제 차림표 속에 당연히 있을 법하면서도 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국제영화제다. 전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규모와 비교해볼 때, 유럽의 칸이나 베를린영화제에 필적할 만한 국제영화제 하나쯤 있음직도 하지만 정작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는 유타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의 축제, 선댄스영화제라고들 한다. 동부에서는 그나마 유럽의 주요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예술영화들을 소개하는 뉴욕영화제가 눈높이를 맞춘 정도.
6월11일부터 21일까지 LA의 주요 예술영화관에서 전세계 200여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제9회 LA영화제’는 AFI필름페스티벌, 아메리칸영화마켓(AFM) 등 산업적인 측면이 강화된 LA의 영화풍경에 ‘국제적인’ 면모를 더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3년 전 독립영화인단체인 IFP(Independent Feature Project) 서부지구가 영화제 기획을 떠맡은 이후 ‘독립영화’와 ‘외국영화’가 변모한 영화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뉴욕과 시애틀 등 미국 주요 6개 도시에 지부를 가진 IFP는 미국 독립영화인들에게 영화제작 실무 전반에 걸친 정보와 교육, 네트워크 등을 제공하는 명실상부한 독립영화인들의 요람이다.
주관단체의 성격을 반영하듯 영화제의 부대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저예산영화 제작법’, ‘감독과의 커피 토크’ 등의 워크숍이나 <LA타임스>가 “가장 LA적”이라고 평한 ‘야외영화 상영’ 및 ‘수영장 좌담’ 등이 눈에 띈다. LA영화제만의 개성있는 뮤직비디오 섹션도 주목할 만한 부분. 올해는 전세계에서 출품된 72편의 장편과 60편의 단편 작품, 47편의 뮤직비디오 외에 지아장커 회고전이 특별 기획되는 등 중국영화가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한편,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오프닝작 <쿨러>(The Cooler) 외에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던 북한 축구팀의 그 이후 이야기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생애 최고의 게임>(The Game of Their Lives)은 관심을 끄는 화제작. 영국 출신의 감독 대니얼 고든(Daniel Gordon)은 수년간의 협상 끝에 직접 북한을 방문, 추억의 축구팀을 직접 인터뷰하고 한번의 승리가 선수들과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 끼친 여파를 기록했다. 할리우드가 장악한 LA의 영화차림표가 잠시나마 이 색다른 맛의 독립영화와 외국영화들로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