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100년 최고의 스릴러 100편’, ‘영화사 100년 최고의 영웅과 악당 100인’. 심심하면 외신을 통해 날아드는 이 목록은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가 정기적으로 선정해 TV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AFI가 소재한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최고 유력지 <LA타임스>는 6월17일치 기사를 통해 영화예술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목표로 탄생한 AFI가 ‘영화사 100년 베스트’ 시리즈로 대표되는 손쉬운 기획에만 몰두해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LA타임스>는 잡지를 비롯한 무수한 대중매체가 근거없는 ‘베스트 모음’ 기획을 양산하는 마당에, AFI라는 이름을 간판에 내건 프로그램이 영화사에 대한 비평적 분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으며 시청률과 영향력도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AFI가 주관하는 유서 깊은 ‘평생공로상’도 1993년 선정 기준을 고친 이래 존 포드, 앨프히드 히치콕, 존 휴스턴 같은 거인을 기리던 과거의 품격을 버리고 톰 행크스, 해리슨 포드 같은 스타를 수상자로 지목해 대중의 이목을 끄는 자리로 변질됐다고 한탄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평론가 조 모겐스턴도 “AFI는 영화사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영화사를 교육하는 단체임에도, 어정쩡한 교양주의에 봉사하는 100편의 베스트 뽑기에 치중해 스타 추종문화를 마케팅하는 단체로 둔갑했다”고 비판했다.
AFI에 핑계가 있다면 연방문예진흥기금의 지원이 축소된 이후 연간 1400만달러의 재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AFI는 ‘베스트 100’ 시리즈로 한편당 약 100만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LA타임스>는 ‘베스트 100’ 쇼의 시청률마저 하락한 지금이야말로 AFI가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에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