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압력에 점잖아진 섹스신
할리우드의 품행이 방정해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할리우드가 대중문화의 대세를 거슬러 섹스에 관해 점잔을 빼는 태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간 R등급을 받은 미국영화는 8편에 머물러 지난해의 18편이나 5년 전의 25편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아이덴티티>나 <드림캐쳐>(사진)의 예에서 보듯 대부분이 성적 묘사가 아닌 폭력성으로 말미암아 R등급 판정을 받았다.
<가디언>의 뉴욕 주재 기자 에드워드 헬모어는 할리우드가 1930년대 스타일의 ‘침실 매너’로 회귀하게 된 원인을 정치권의 압력과 누드 연기를 기피하는 배우들의 움직임에서 찾았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R등급 영화 마케팅이 은연중에 미성년자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스튜디오 관계자를 출석시킨 청문회 등을 개최한 워싱턴 상원의회의 압력이 현장에서 효과를 내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디언>은 <원초적 본능> <쇼걸>의 감독 폴 버호벤이 영화지 <프리미어>와 인터뷰에서 던진 “엄격한 청교도로 소문난 존 애시크로프트가 법무장관인 시기에 뭘 기대하겠는가?”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섹스신에 대한 거부감이 할리우드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관찰도 나오고 있다. 배우는 성적 접촉 장면을 꺼리고 작가와 감독도 섹스신을 쓰고 찍는 일을 내켜하지 않으며 관객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스튜디오들도 선정적인 장면에 과거처럼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의 <아이즈 와이드 셧>은 기대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영화 하나를 자기 이름으로 개봉시킬 수 있는 줄리아 로버츠나 리즈 위더스푼 같은 여배우가 베드신 없이도 수천만달러의 개런티를 받을 수 있고 이들의 상대 남자배우들이 벗는 연기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지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게다가 점점 많은 젊은 여배우들이, 성적 매력을 직접 몸을 보여주기보다 암시로 표현하는 TV매체를 거쳐 영화로 진출한다는 사실도 섹스신 연기에 대한 열의의 시들함을 설명한다. 대체재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가디언>은, 노골적인 성묘사를 인터넷이나 DVD의 정지화면으로 얼마든지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보디 히트>나 <나인 하프 위크> 커플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정사를 구경하기 위해 극장을 찾던 시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부언했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