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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또다시 불거진 스크린쿼터 축소 논쟁의 본질 - 유지나
유지나(평론가) 2003-06-23

할리우드를 위한 공정치 못한 게임의 법칙

다시 스크린쿼터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낯익은 논쟁, 같은 시나리오, 평행선을 달리는 인식의 차이는 단순명료한 해법을 오히려 복잡한 퍼즐판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이 익숙한 논쟁판은 사실여부 확인의 혼선 속에서 영화의 수혜자이자 창조자인 다중을 이용하는 동시에 정보 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소수 자본가를 뒤에 감춘 채 벌어진다. 심지어 쿼터축소 내지 폐지에 관한 심각한 언급을 인용하는 오보 해프닝까지 거듭돼 오해와 왜곡의 게임판으로 변질하기조차 한다(며칠 전 <문화일보>에 보도된 청와대 정책실장의 쿼터축소 필요성은 곧 오보로 밝혀졌다. 지난 4월25일 <내외경제신문>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쿼터제 폐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기사화하자 곧 공정위는 이 사실을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건 <X파일>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쿼터 없애기 시나리오판이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누군가가 밝힐 수 없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일을 꾸민다는 음모론을 거론하고 싶진 않다.

그보다는 이제라도 사실관계 여부를 밝히고 그것이 오해되는 맥락을 짚어보자. 그러면 이 논쟁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다. 그 속에서 쿼터제의 본질과 기능도 좀더 명확해질 것이고, 이 논쟁을 시작한 이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쿼터제를 축소하자는 이들의 경제정책과 경제철학, 영화를 뭐라고 보는지, 또 문화산업 정책이 뭔지, 이 모든 것을 안고 가는 이 나라가 뭐라고 생각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정책결정을 하는지를 독자이자 국민인 당신이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국익론의 실체

쿼터축소 논란의 배경은 한-미투자협정 체결이다. 이 사안은 경제관료에겐 밀린 과제이다. 기억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상황에서 외자유치가 절실했던 DJ 정부는 미국에 먼저 한-미투자협정을 맺자고 요청했다. 미국의 극장업 투자자본이 들어오려면 시장장벽을 막는 쿼터제도를 축소/폐지해야 한다는 미국쪽 입장을 우리쪽 통상관료들이 수용해서 영화계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영화인과 시민사회단체, 여론의 힘으로 막아냈다. 그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경제상황이 암울해지자, 일부 경제 엘리트들이 국익론을 내세우며 다시 쿼터제 축소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은 한-미투자협정을 맺으면 경제가 좋아지고 우리 모두 잘살게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이런 주장을 할 것이다. (투기자본까지 포함하여) 미국 자본, 근거를 밝히지 않는 40억달러 투자유치 효과가 거기서 나온다. 심지어 미국 자본이 한국에 많이 투자되면 이익을 챙기려는 자본가의 자기보전 욕망에 따라 한반도 전쟁 방지효과도 있다는 엽기적 주장까지 (경제관료 출신) 국회의원으로부터 나온다.

월드컵 유치효과로 국익을 계산해낸 경제관료들의 계산법은 이미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핑계는 있다. 이라크전, 사스 같은 대외적 여건 악화 같은 것. 그러나 국익을 책임질 경제정책가라면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최악, 차악까지도 포함한 몇 가지 계산을 하는 법이다. 복안도 있어야 하고. 아마 복안이 한-미투자협정이라면, 그걸 맺으려고 쿼터를 협상해서 더 큰 국익을 얻는다는 계산을 또 잘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협정에서 강자인 자본가의 나라 미국이 더 큰 이익을 취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장론의 부작용은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이 내놓았다. 아직도 IMF와 경제관료의 책임을 분리해서 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5년간 미국 영화자본가 대행자들과 만나 쿼터제를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그들의 핵심은 ‘시장접근 용이성’임을 곧 알게 된다. 누구를 위한 시장접근인가, 물으면, 당연히 소수 자본가이다. 세계시장 80%를 차지하고도 더 미국영상시장을 확대해야 하는가, 라고 물으면 시장확대는 비즈니스의 메커니즘이라고 답한다. 이게 바로 여러 가지 경제논리 중 하나에 불과한 자본가 중심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정체이다.

스크린쿼터는 미국영화 독점 방지제도

쿼터제를 축소하자는 주장의 한가운데서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영화의 활력과 경쟁력에 관한 것이다. 한국영화 국내시장 점유율도 40%를 넘어 50%에 다가가니 더이상 보호막이 필요없고, 또 보호막에 안주하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교훈, 그에 곁들여 관객 선택권을 위해 쿼터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 논리도 앞뒤가 안 맞는데다 영화산업 자체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다.

한국영화가 최근 5년간 비약적 성장세를 보이며 40% 이상 시장점유율을 갖게 된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배급-상영을 촉진시켜 제작편수의 안정적 물량을 확보하게 하는 쿼터제도이다. 그런데 이제 좀 잘되니 그 받침대를 빼내자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제 높은 데 좀 올라가려고 중간쯤 발을 놓았는데 갑자기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뒤에 붙어다니는 경고, 즉 한국영화가 쿼터란 보호막에 안주하면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주장도 기이하다. 쿼터제도가 사다리든 보호막이든 그건 수사에 불과하나 무엇이 되었건 그 덕에 한국영화가 잘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경쟁력 제고의 조건이지 약체질을 만드는 보호막이 아니다. 실제로 쿼터제도가 자리잡고 지켜진 뒤 한국영화는 괄목할 성장을 보였고 해외진출도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제도 덕에 한국은 프랑스와 함께 자국 문화정책을 가장 잘 지켜내 미국화에 불과한 세계화의 거센 바람 속에서 문화다양성을 구현하는 나라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제도의 축소를 위해 여론을 호도하는 이유 중에는 쿼터제도가 관객선택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한국에서, 또 세계에서 할리우드영화가 걸리는 날은 연간 며칠일까? 일단 쿼터제도 일수보다 훨씬 많은 날들이란 짐작이 들 것이다. 이건 할리우드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관객이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세계시장용 공격적 마케팅과 상영시스템 때문이다. 잘 만든 영화가 극장에 오랫동안 걸려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은 작금의 영화배급과 상영체제 속에서 불가능하다. 그나마 쿼터제는 기형적 마케팅시스템으로부터 할리우드영화가 안 걸리는 날의 여지를 만들어 관객의 선택권을 좀더 챙겨주는 공적 기능을 갖는다. 그 속에서 쿼터제의 고민은 축소보다는 오히려 확대와 세련화된 전문성 보완에 놓여 있다. 독점방지와 다양성 확보란 취지에 맞도록 다른 마이너 영화들, 대안영화들,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제도화가 우리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선 오히려 쿼터일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불공정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 하나?

그런데 쿼터제가 있기에 성취한 시장점유율과 국내시장에서 막 생겨난 미국영화에 대한 경쟁력을 봐주기가 그렇게 불편한가? 더 솔직히 말하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국제경쟁력이란, 말이 경쟁력이지 불공정 게임의 법칙일 뿐이다. 시청각 분야에서 이미 세계시장 80% 정도를 독점한 미국판이다. 게다가 영화는 경제적 산물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산물 아닌가. 그런데도 이런 영화산업을 두고 경제적 측면만 보자는 이들은 자신이 다루는 대상의 정체성조차 무시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왜 이래도 되나? 한국이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 밑에서 세계를 미국으로 보고, 세계화를 미국화로 그대로 수용하는 기이한 관습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고 국익을 계산해내고 국민에게 혼란스런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국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모셔야 하는 게 우리의 비극적 현실이다.

영화는 자본과 노동, 기술과 정신이 만나는 종합적 산물이며, 지역문화와 언어, 삶의 환희와 고뇌가 담긴 산물이다. 게다가 영화는 방송, 비디오, CD, 음반, 여타 시청각 산업으로 연결된 핵심 아이디어가 담긴 영상산업의 총아이다. 최근 10년간 시청각 콘텐츠산업의 성장률은 영화의 활성화와 더불어 성장세를 보여준다. 근거없는 40억달러 때문에, 그 결과가 불투명한 한-미투자협정 때문에, 미래산업이며 아시아 문화권의 한 부분, 한국어가 담긴 문화적 산물을 내주자는 것은 이 나라 정신문화의 산업화를 포기하는 일이다. 쿼터제도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해서 수출해야 할 제도이며, 실제로 그런 요청이 미국 압박으로 쿼터를 포기한 여러 국가들로부터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17일 있었던 쿼터제 지지 프랑스 영화인들은 말한다. 당신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린 지난 50년간 미국과 이 싸움을 하며 영화와 문화를 지켰고,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라고.

2005년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문화다양성 협약은 세계무역기구(WTO)에 맞서 각 나라, 각 지역의 문화정책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문화다양성이란 차이의 가치하에서 문화산업을 교류하고 시장을 확대해가는 공존의 문화세상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서 문화권은 삶의 질을 위한 인권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미국만을 외국, 세계로 보며 영화산업을 할리우드식 시장법칙으로만 파악하는 이들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거래해버렸기에 국민을 위한 계산법, 다중의 이익을 위한 계산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