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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빚은 ‘추억’, 고통 덧난 삶
2003-06-23

영화 <살인의 추억> 뒤켠, 화성 피해자 가족 착잡

영화 <살인의 추억>이 지난 20일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지만, 정작 주인공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화려함’의 뒤안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90년 11월 13살에 살해된 9차 피해자인 김아무개양의 아버지는 “딸도 묻었고 내 인생도 묻었다”면서, <살인의 추억>이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대해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말문을 닫았다.

피해자 가족들 상당수는 사건 발생 뒤 아예 외지로 떠나버리는 등 종적이 묘연한 상태이다. 그 중 88년 7차 사건 피해자인 안아무개씨 가족은 호적등본조차 없이 사라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91년의 10차 사건 때 숨진 권아무개씨의 남편은 살인을 저지른 뒤 이듬해인 92년3월 충남 공주의 치료감호소에서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애초 치매 증세가 있었던 권씨 남편은 아내가 죽은 뒤 증세가 심해져서 살인까지 저지르고 치료감호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1~6차 사건 피해자들은 영구미제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인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화성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3차 사건 피해자 가족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돈 많이 번 스타’라면 우리들은 ‘가슴아픈 스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77살의 노모는 해마다 사건날 전후 2~3일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채 눈물만 흘린다”고 전했다.

4차 사건의 피해자 가족은 “18살 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이사한 뒤 집에서는 화성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도 못한다”며 “아버지는 정신적 충격으로 생업인 건축업조차 그만 두고 여러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여론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한 피해자 가족은 “영화를 만들며 유족에게 한마디 동의를 구한 적이 있느냐”고 오히려 반감을 드러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성폭행당한 피해자만 20여명이 넘는다”며 “영화가 나온 뒤 우연히 만난 한 피해자는 요즘 들어 자꾸 누가 쫓아와 죽이는 꿈을 꾼다고 하소연했다”고 말했다. 화성/홍용덕 김기성 기자 ydhong@hani.co.kr